5월 멍에 짊어지고 산 윤한봉 ‘주홍글씨’ 영화로 지우다
2025년 01월 16일(목) 21:05
김경자 감독 다큐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 광주독립영화관 상영
제작 기간만 7년…도피 이후 펼쳤던 평화운동·저항의 삶 조명
김진숙 목사·한청련 장광민 등 교류했던 인물들 생생한 증언도

영화 초입과 말미에 삽입된 윤한봉의 귀국 장면. <김경자 제공>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윤한봉은 광주 5·18민중항쟁 당시 마지막 수배자로 알려져 있다. 계엄군의 검속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뒤 미국에서 광주 참상을 알리는 한청련을 조직했으며 1994년 5·18기념재단을 설립하기 이른다.

등 뒤로 두 손이 묶인 채 계엄군에게 연행됐던 모습을 연상시키듯 그의 호는 ‘합수(合水)’다. 모교 전남대는 추모 의미에서 작년 제막식을 열고 농업생명과학대 일원에 ‘윤한봉 정원’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선봉에 섰던 합수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있다. 바로 1980년 5월 17일 계엄군에게서 도피한 뒤 ‘마지막 수배자’이자 ‘도망자’로 각인된 것.

김경자 감독의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는 그런 윤한봉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지난 14일 저녁 광주독립영화관에서는 상영회를 겸해 관객과의 만남(GV) 행사가 열렸다.

연출자 입장에서 멍에를 짊어지고 살았던 윤한봉을 다뤘다는 점은 나름의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윤한봉의 광주 행적을 부각시키기보다, 도피 이후 세계 전역에서 펼쳤던 평화운동에 주안점을 두고 싶었다”며 “전작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5월 여성에 주목했다면,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이 ‘도망자’로 알고 있지만 저항의 삶을 살았던 그의 행적을 핍진하게 보여주려 한다”고 했다.

그런 부담감이 사료 수집, 인터뷰 과정과 맞물려서인지 영화 제작 기간만 총 7년에 달한다.

영화 초입은 윤한봉이 미국 도피 후 인천공항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세례를 받던 장면으로 시작한다.

“같이 죽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그의 말은 영화 말미에서도 반복되는데 그 이유에 대해 김 감독은 “짧은 멘트지만 윤한봉의 생각이 응축돼 있는 대사”라며 “그의 고뇌와 속죄하는 마음, 울분 등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장면이라 여러 번 삽입했다”고 설명했다.

김경자 감독
영화는 생전 윤한봉과 교류했던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도 담았다. 1981년 당시 시애틀에서 밀입국을 도왔던 김진숙 목사는 처음 윤한봉과 만날 때 ‘진달래꽃을 좋아합니다’라는 암호를 댔던 기억을 풀어놨다. 이 일화가 영화 제목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청련에서 일했던 상근활동가 장광민을 비롯해 김난원, 민족학교 초기부터 활동한 홍기완·홍광자 등 인물들의 생생한 증언도 흥미롭다. 당시 북한 관련 조직으로 오해를 받아 FBI에서 집에 방문했던 일, 민족평화대행진을 준비하며 풍물패를 꾸리고 가두행진을 했던 일은 민중이 희원했던 평화 가치를 반추한다.

김 감독은 윤한봉의 도피와 광주 행적보다 그가 기획·실행했던 1989년 ‘국제평화대행진’ 과정에 주목한다.

당시 윤한봉과 소통하던 황석영 작가 또한 “학생 운동가였던 그(윤한봉)가 오히려 작가보다 상상력이 더한 것 같아 반성했다”며 “몽상에서 출발한 국제평화대행진이 현실화된건 많은 사람들의 끝없는 노력 덕분이었다”며 회고했다.

나아가 영화는 윤한봉의 활동이 오늘날 어떻게 뿌리내렸는지도 조명한다. 그로부터 시작됐던 한인 커뮤니티들은 오늘날 뉴욕 민권센터로 성장해 1년 예산이 200만 달러에 육박하는 단체로 성장했다. 필름에 담긴 민족학교 킹슬리나 오렌지카운티 등은 아직까지 미국 전역에서 5·18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교육하고 있다.

이날 한 관객은 “광주에 살아가는 건 늘 힘들고 부채 의식이 있지만, 그게 우리들 모두의 삶이었다”며 “영화 속 합수는 죽음이 자신의 소명인듯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인지 1980년 광주의 비극적 일화와 타향에서 평화를 모색했던 전 과정이 생생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이어 “도망자로서 알려진, 또는 도망자인지조차 모르는 윤한봉이 이 땅에서 무언가를 해냈고 떠났다는 걸 알리는 작품이기에 감회가 남달랐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화에서 밀항 장면 등을 묘사하는 삽화는 전현숙 작가가 그렸으며, 프로듀싱은 진모영 영화감독이 맡았다. OST로 삽입된 ‘해방가’나 ‘그날이 오면’, ‘예성강’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영화는 윤한봉이 1993년 5월 망월동 묘역에서 전영진 열사에게 헌화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면서 이성복의 시 ‘그날’ 중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는 내레이션이 나지막히 들려오면서 울림을 남긴다.

윤한봉은 고문 피해와 밀항하며 악화된 폐기종으로 2007년 생을 마감, 5·18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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