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망대해 불빛 비춰 나아갈수 있겠다는 위안 얻어”
2025년 01월 12일(일) 19:20
2025 광주일보 신춘문예 신인작가 3인 인터뷰
소설 김근수“글의 객관성 담보됐다는 사실에 다소 안도”
시 이문희“큰 짐 하나 내려놓고 다시 짐 챙겨 떠나는 기분”
동화 수이레“마음 속 ‘이야기 씨앗’ 꺼내 꽃으로 키울 터”

소설 김근수

문학출판계 새해의 뜨거운 뉴스 가운데 하나는 신춘문예다. 주요 일간지 신년호에 부문별 당선작과 당선자가 발표되면 문청을 비롯해 문학애호가들, 독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투고했던 응모자들은 올해는 어떤 이가 신춘문예 당선의 영예를 안았을까 라는 궁금증과 함께 내년에 대한 기약을 하게 된다.

기자는 2025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3명 신인작가들과 얼마 전 전화와 지면으로 인터뷰를 했다. 김근수(소설), 이문희(시), 수이레(본명 김선영·동화) 세 신인들에게선 신춘문예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는 기쁨과 아울러 앞으로 문학의 길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등이 느껴졌다.

김근수 소설가는 당선 소감을 묻는 질문에 “글의 객관성이 일정부분 담보되었다는 사실에 다소 안도하게 되었다”며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이에게 멀리서 희미한 불빛을 비추어 줘, 그것을 좌표 삼아 나아갈 수는 있겠다는 위안이 됐다”고 말했다.

시 이문희
이문희 시인은 “작년 한식날 아버지 묘에 잔디를 입힌 기억이 났다”며 “나라도 주변도 다소 우울한 날들이어서 산책하며 혼자 울다 웃다 했다. 큰 짐 하나를 내려놓고 다시 짐을 챙겨 떠나는 사람처럼 다독이며 시간을 즐기고 있다”고 전했다.

동화 수이레
수이레 동화작가는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와서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다가 당선 소식을 듣고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했다”며 “그날 밤 동화를 쓰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흘러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이들의 소감에는 떨림과 담담함이 담겨 있다. 신춘문예에 대한 꿈을 오래전부터 꾸어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인작가들은 어떻게 문학과 창작을 공부했을까.

“학부 때 영문학을 공부하며 자연스럽게 문학을 접하게 됐고, 집중해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에 문학과 창작을 따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다만, 문학 작품을 읽으며 서사와 스타일을 나누어 보는 버릇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그간 공부가 게을렀으니, 지금부터 문학에 진심이 되어 보려 한다.”(김근수)

“백석 시집을 시작으로 많은 시인들의 시를 필사했다. 고전부터 현대시를 쓰는 시인에 이르기까지 필사노트 만해도 6권이 넘는다. 필사의 느낌과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우수 문예지와 수상시집, 신춘문예 당선집 등을 읽었다. 많이 읽는 것이 기본 중 기본이라 생각했다.”(이문희)

“여동생이 그림책과 동화책에 삽화를 그리는 그림작가다. 결혼 후 퇴사를 한 저에게 “언니는 글 쓰는 걸 좋아하니까, 그림책에 글을 한번 써 봐”라고 권해주었다. 글을 쓰면 자기가 그림을 그리겠다면서. 막상 글을 썼는데 동생이 너무 바빠서 그림을 못 그려주는 상황이 됐고 할 수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동화를 공부하게 됐다.”(수이레)

그러나 창작을 시작한다고 바로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글쓰기는 마라톤과 같아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맞닥뜨리게 되고 내 길이 아닌 것 같은 불안과도 싸워야 한다.

김근수 작가는 신춘문예 응모하기 전 장편소설을 출간한 경험이 있다. 19세기 말 조선을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인데, 완성하기까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등 관련 도서를 100권 넘게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5년여를 고투하면서 주말마다 한 줄씩 쓰자는 심정으로 결국 2020년 1월에 세상에 내보내게 됐다”며 “나중에 아내가 ‘글을 쓰는 동안 절필만 수십 번 선언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이문희 시인은 학생 신분이 아닌 주부로서 시를 공부하다보니 먼 곳의 강의나 일박을 해야 하는 캠프는 꿈도 못 꿨다. 그러면서 어느 유명 시인의 강의가 있던 캠프에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휴대폰으로 남편 전화가 왔는데 ‘밥솥에 밥을 하는 중에 작동이 안 된다’는 거였다. 복도에서 한참을 전화로 사투를 벌이는데 강의가 다 끝나고 사람이 나오더라”고 말했다.

수이레 동화작가는 동화 공부를 시작한지 10년이 넘었지만 결실이 없었다. 재능이 없는 걸까? 포기하고 다른 것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는 것이다. 동화공부를 했으니 이걸 활용하면 좋겠다 싶어 독서논술 자격증을 땄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동화를 그만 쓰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매일 동화를 읽었고 미련이 남았다”며 “그러다 제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 전했다.

3명의 시인들은 창작 외에도 저마다 의미있는 사회활동을 했거나 하고 있다. 김근수 작가는 공공기관 이전 정책으로 회사가 혁신도시로 옮겨오면서 나주에 정착했다. 한국전력공사(2003~2022)를 거쳐 현재 한전CSC에 근무하고 있다.

이문희 시인은 이십대 초반에 연극을 했는데 소극장 무대에서 두 달 정도 정기공연을 했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대사에 감동을 했는지 눈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수이레 동화작가는 대학을 졸업하고 IT회사 디자이너로 일했는데 글 솜씨 덕분에 기획자로 일하게 됐다. 이후 다양한 온라인 전시를 기획했으며. 동화를 공부하고 독서논술 선생님이 됐다.

3명의 신인 작가들은 이제 출발선에 섰다. 신춘문예 당선은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글을 써도 좋다는 ‘자격증’에 불과하다. 앞으로 활동 여부에 따라 문학의 결실은 달라질 것이다.

“밀쳐 두었던 장편소설을 올해 안에 마무리할 계획인데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가 없다. 시를 읽고, 음악을 듣고, 수변을 걸으며 일상을 긍정하겠다. 그리고 쓰겠다.”(김근수)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주문했는데 느슨한 시간에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이다. 찜해 둔 넷플릭스 영화도 볼 예정이다. 그동안 쓰느라 애쓴 5년만의 휴식인데 더 신나는 게 뭐가 있을까 궁리하고 있다.”(이문희)

“이제는 마음속으로만 간직했던 이야기 씨앗을 꺼내 꽃으로 키워보려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치지 않고 가보련다. 제가 가꾼 꽃이 누군가에게 기쁨과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수이레)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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