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 아이들의 삶
2025년 01월 10일(금) 00:00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줄리안 보저 지음, 김재성 옮김
독일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트라세역 앞에는 ‘삶의 열차, 죽음의 열차 1938~1945(Trains to Life-Train to death’ 1938~1945)라는 조각이 서 있다. 작품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7명의 아이가 등장하는데, 인형을 품에 안고 가방을 든채 바삐 움직이는 두 아이의 모습은 밝기 그지 없다. 반면 반대쪽에 자리한 다섯명의 아이들은 겁에 질린듯 자포자기한 모습이다.

다섯명의 아이는 홀로코스트 기차에 태워져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다 살해된 유대인 어린이를, 두 명은 동유럽 국가들에서 기차를 타고 영국 등으로 건너가 목숨을 건진 1만명의 아이들을 상징한다.

나치의 만행은 아이들에게는 무방비 상태였고, 부모들은 어떻게든 아이들을 탈출시키려 애썼다. 나치가 점령한 오스트리아 빈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들은 영국의 일간지 ‘맨체스터 가디언’에 광고를 내 자신의 아이를 받아줄 사람을 간곡히 찾았다.

로버트 보거.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제 아들, 총명한 11세 남자아이를 교육시켜줄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 보거가 빈 3구 힌처슈트라세 5번지 12호.” 1938년 8월 3일자 신문에 실린 광고는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로부터 83년 후 ‘가디언’의 세계 문제 편집자로 일하는 줄리안 보저는 ‘총명한 11세의 남자아이’가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자신의 아버지로버트 보거임을 알게되고, 아버지와 신문에 실린 7명의 아이들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신작 ‘친절한 분을 찾습니다-나치를 피해 탈출한 유대인 아이들의 삶’은 그 결과물이다.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탈출한 리스베트 바이스의 여권. <뮤진트리 제공>
“건강하고 영리하고 음악을 무척 좋아하는 13세 중등학생”과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고 바느질을 잘하며 가사를 도울 수 있는 교양 있는 14세 유대인 여자아이” 등 당시 광고에 실린 아이들은 모두 80명. 아버지와 같은 시기에 같은 빈에서 살았던 그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았을까, 아니면 부모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삶을 얻지 못했을까. 3행짜리 광고 이면에 감추어진 이야기를 좇아 저자는 가족의 기억을 소환하고 중국 상하이의 게토, 홀로코스트의 현장인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등 세계 각지에서 펼쳐졌을 이야기를 추적한다.

“공포에 사로잡힌 열한 살 난민으로 영국에 발을 디딘 아버지와의 첫 만남 이후, 나이가 들어가는 성인 남자의 내면에 웅크리고 앉은 겁에 질린 소년을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다”는 영국의 위탁모 낸스의 말처럼, 저자의 아버지 보비는 따뜻한 영국 부부의 도움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대학교수가 됐지만, 오랜 기간 감춰뒀던 트라우마가 발현되기 시작해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프레드와 프리츠 형제는 빈을 떠난 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끌려갔다. 바로 옆에 있던 친구와 그의 아버지가 가스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등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프레드는 죽음과 구원을 다룬 회고록 ‘폐철로의 아이들’을 발간했다.

11살의 나이로 부모의 품을 떠났던 게르트루트는 “우리를 진실로 아껴주는, 가족을 향한 끝없는 그리움에 더해 근심과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는 사지를 파고드는 외로움”을 겪으며 생을 이어왔다.

저자는 “폭력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고 전쟁의 진정한 이야기는 수년 수십 년 동안 이어진다”며 “광고의 이면에서 본 것은 불가피하게도 비극과 참상이었지만 그 이야기들의 대부분에는 살아남은 기쁨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뮤진트리·2만3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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