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획자 - 김꽃비 문화기획자
2025년 01월 09일(목) 00:00
점점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독립기획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도 올해 벌써 3년째다. 햇수로 9년을 일한 기획회사를 퇴사한 후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스스로 경쟁력을 실험해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론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굴리던 여러 일들을 전개하며 자유롭게 움직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한 N잡러의 삶이 생각보다 만족스럽고 길어지고 있다.

이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인지 지난 몇 년간 흥미롭게 관찰한 단어 중 하나가 ‘핵개인’이라는 표현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간과 시대의 마음을 해석하는 ‘마인드 마이너’ 송길영 작가가 그의 책 ‘시대예보’ 시리즈에서 개념을 제시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핵개인은 권위를 가진 전통적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고도화된 디지털 도구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새로운 개인들을 의미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런 핵개인들의 도래가 ‘대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기존의 시스템을 전복시키고, 경쟁을 위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자신만의 골(goal)이 있는 건강한 사회로 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본 작가의 견해였다. 스스로의 서사에 집중하면서도 능력 있는 개인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협업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펼쳐지는 것이다.

사실 문화예술기획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대다수의 사람들이 프리랜서 혹은 N잡의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짧게는 2~3개월부터 6개월, 1년 단위의 프로젝트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작가로 작업을 병행하며 기획자로 일하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전시, 공연, 축제 등 문화예술 행사들은 현장에서 단기 프로젝트 기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헤쳐 모여!’식으로 조직을 구성하는 프리랜서식 일하기 방식이 선호되었다. 이런 방식은 과거에는 고용불안을 만드는 큰 단점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협업 가능성을 높이고 스스로의 본잡(job)에 효용을 더한 N잡러로 발전을 가능하게 한다.

앞으로는 핵개인의 일하기 방식이 유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실제로 현장에서 N잡을 실행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만들어가는 매력적인 개인들을 꽤 많이 만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광주의 오월’을 주제로 ‘에브리씽, 메이, 올앳원스’라는 공론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론장이 열릴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토론 키워드를 제시하는 호스트를 매회 1팀씩 섭외했는데, 이들은 모두 지역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독창적인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들이었다.

시각디자이너로 일하며 주말에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을 운영하는 기획자, 활동가로 일하면서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연구자,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커뮤니티를 기획하는 사람, 제로웨이스트 샵을 운영하며 기후활동가로 강의를 하는 사람, 어덜트 토이샵을 운영하며 컨설팅 연구자로 일하는 사람, 영화를 주제로 강의하고 프리랜서 기고가로 글을 쓰는 사람, 카페에서 일하며 사진작가로 활약하는 사람 등등 본업을 훌륭하게 전개하면서도 N잡러로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이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남이 아닌 나 스스로와 경쟁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우리는 경쟁을 위해 치르는 수많은 기회비용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개인의 서사를 오랜 시간 만들고 다듬어 온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서사 또한 존중할 줄 안다. 때문에 ‘핵개인의 시대’는 단순히 조직을 전복시키는 이기적인 개인주의 시대가 아니라 서로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상호존중과 배려가 있는 협업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일자리가 없고 예산도 없고 한숨만 늘어가는 상황이지만 스스로를 핵개인이라 정의하고 서로를 호명할 용기가 있다면 분명 반짝이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분야를 개척하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들과 협업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2025년에는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매력적인 ‘핵개인’들을 더 많이 발견하고 조명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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