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바람 - 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 전 네팔 카트만두대 객원교수
2025년 01월 08일(수) 00:00 가가
19세기 말,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시던스트라이커(Sydenstricker) 부부 사이에 태어난 펄(Pearl, 1892~1973)은 존 로싱 벅(John Lossing Buck)과 결혼하므로 남편 성을 따라 펄 벅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1938년,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1968년에 한국 전쟁 혼혈아를 주제로 ‘새해(The New Year)’를 출간하였다. 펄 벅의 한국 이름은 ‘벅’에 가까운 박씨 성을 써서 ‘박진주’였다.
소설에서 크리스토퍼 윈터스는 결혼 후 몇 달 만에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다행히 살아서 돌아왔다. 삼십대에 주지사로 출마하여 한창 기세를 올릴 즈음, 한국에서 뜻밖의 편지를 받았다. 전쟁 중에 태어난 아이, 한국 어머니의 성과 미국 아버지의 이름을 딴 김 크리스토퍼는 아버지가 없어서 출생신고를 못하니 학교에 못 가고 외할머니의 냉대를 받으며 고급 요정을 경영하는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못 찾고 방황하던 열한 살 혼혈 소년에게 단 하나의 구원은 미국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남편의 과거를 알게 된 로라는 엄청난 좌절과 분노, 실망 속에서도 마음을 다잡고 남편의 옛 여자와 그의 아들을 만나러 한국에 왔다. 그때의 한국은 좌우 이념 갈등이 심각한 상태여서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했고 혼혈 아들에 대한 시각이 사뭇 위협적이라 아이의 운명이 로라의 결정에 달려 있었다. 결국 로라는 아이를 미국으로 데려오지만 혼외자가 세상에 알려지면 선거전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에 먼 곳의 기숙학교에 맡겼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자신이 거부당한다는 것을 감지한 어린 소년은 정체성 혼란과 우울감으로 멍들어 가지만 주지사를 넘어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남편은 아이를 집에 데려올 수 없었다. 그러나 불임인 아내는 해양과학자로서 혼혈이 유전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것을 알기에 미래의 기대까지 더하여 아이를 데려와 함께 살기를 원했다.
연말 파티, 주지사에 당선된 그는 수많은 손님들 앞에서 묻어두었던 과거를 고백한다. “저도 그 젊은이들 중의 하나였습니다”를 반복하며 참전 당시를 회상한다. “그때는 그것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들은 순간순간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으며 여자의 품에서, 낯선 여자의 품에서나마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 그 짧은 결합은 흔히 내일의 죽음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새로운 인종’, 세상이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도 전에 너무 일찍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 크리스토퍼를 방안으로 불러들이는데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너무도 닮은 꼴, 그들이 부자지간임을 몰라볼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우리 아들’이라 부른다. 아들은 아버지의 청을 받고 한국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청아한 음성으로 ‘나의 조국, 그대를 위해’를 불렀다. 손님들은 원로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 이들을 둘러싸고 환영과 축하인사를 건넨다. 바로 그때, 종이 울리고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새해의 축가를 부른다.
한 때는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여 거리를 방황하던 참담한 아이는 혼란기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국 어머니의 포기하는 사랑, 미국 어머니의 받아들이는 사랑, 아버지의 책임감과 결단은 위기를, 하마터면 치명적이었을 그 위험한 순간을 최고의 기회로 만들며 아들을 세상에 소개하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펄 벅의 ‘새해’는 아버지와 아들, 두 크리스토퍼를 통하여 가정의 화합을 넘어서 국가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암시한다.
어린 크리스토퍼의 삶에서 일제 치하, 한국전쟁 등 숱한 격랑을 겪고 살아남은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고난과 위기를 넘어서 윈터스 가정에, 그리고 미국의 미래 세대에 새로운 희망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크리스토퍼 주니어처럼, 부디 우리의 2025년 새해가 갈등과 분열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화합과 번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로운 남북통일의 길이 열리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그런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연말 파티, 주지사에 당선된 그는 수많은 손님들 앞에서 묻어두었던 과거를 고백한다. “저도 그 젊은이들 중의 하나였습니다”를 반복하며 참전 당시를 회상한다. “그때는 그것만이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들은 순간순간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속에 살고 있으며 여자의 품에서, 낯선 여자의 품에서나마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 그 짧은 결합은 흔히 내일의 죽음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생명을 탄생시킵니다. ‘새로운 인종’, 세상이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기도 전에 너무 일찍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 크리스토퍼를 방안으로 불러들이는데 나란히 선 두 사람은 너무도 닮은 꼴, 그들이 부자지간임을 몰라볼 사람은 없었다. 아버지는 아이를 ‘우리 아들’이라 부른다. 아들은 아버지의 청을 받고 한국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청아한 음성으로 ‘나의 조국, 그대를 위해’를 불렀다. 손님들은 원로부터 시작하여 하나 둘, 이들을 둘러싸고 환영과 축하인사를 건넨다. 바로 그때, 종이 울리고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새해의 축가를 부른다.
한 때는 누구의 인정도 받지 못하여 거리를 방황하던 참담한 아이는 혼란기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미래가 불확실한 상태였다. 하지만 한국 어머니의 포기하는 사랑, 미국 어머니의 받아들이는 사랑, 아버지의 책임감과 결단은 위기를, 하마터면 치명적이었을 그 위험한 순간을 최고의 기회로 만들며 아들을 세상에 소개하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펄 벅의 ‘새해’는 아버지와 아들, 두 크리스토퍼를 통하여 가정의 화합을 넘어서 국가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암시한다.
어린 크리스토퍼의 삶에서 일제 치하, 한국전쟁 등 숱한 격랑을 겪고 살아남은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고난과 위기를 넘어서 윈터스 가정에, 그리고 미국의 미래 세대에 새로운 희망 아이콘으로 떠오르는 크리스토퍼 주니어처럼, 부디 우리의 2025년 새해가 갈등과 분열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화합과 번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로운 남북통일의 길이 열리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그런 새해가 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