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강화와 대학의 역할 - 문승태 국립순천대 대외협력 부총장
2025년 01월 07일(화) 00:00
대학이 교권 강화라는 한국 교육의 꿈을 이루는 구원투수가 될 수 있다. ‘교권 강화=한국 교육의 꿈’이라는 말까지 쓴 것은 교육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 한국 교육이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는 상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문화를 가진 한국에 교권 강화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대학이 교권 강화에 기꺼이 선봉장이 돼야 한다. 교육과 연구에 매달려도 모자랄 대학이 왜 교권 강화의 선구자가 돼야 하는 물음에 ‘초중등 교육이 살아야 대학도 살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답을 해주고 싶다.

교권 강화는 당사자인 교사만큼이나 한국 사회가 원하는 것이지만 쉽게 성취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뒷걸음 중이다. 전남도 예외는 아니다. 2022년 66건이었던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는 2023년 97건, 2024년 8월까지 193건으로 증가했다. 교사가 학생으로부터 입은 성폭력 범죄도 11건이나 발생했다.

2023년 발생한 서울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이 교권 강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이뤘으나 나아지지 않았다. 재작년 여름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교사가 국회 앞에서 피맺힌 목소리로 교권 강화를 절규했던 모습은 한국 교육사의 비극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 가다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교권 침해가 일어날 것이고, 그때마다 한국 사회는 땜질식 처방으로 사태 모면에 급급할 것이다.

교권 강화가 되지 않는 이유는 경쟁교육 탓이다. 상대 평가로 학생을 줄 세우는 교육이 존재하는 한 교권 강화는 연목구어다. 줄 세우기 교육에서 교사는 ‘지식 전달자’와 ‘숫자 관리자’일 뿐이다. 그래서 교권을 다시 세우려면 근본 원인인 경쟁교육을 완화해야 하는데 여기서 대학이 역할을 할 수 있다. 비근한 예가 제주대가 지역균형선발에 수능을 없앤 걸 들 수 있다. 제주대는 2026학년도부터 의대, 약대, 수의대, 간호대 등 간판 학과에 수능 없이도 들어갈 수 있는 제도를 신설했다.

제주대의 파격적인 입시 변화는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에서 일고 있는 IB(국제바칼로레아)의 열풍과 무관치 않다. IB는 제주에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교육 1번지인 대치동에서 표선의 IB 학교에 다니려는 학생이 줄을 잇고 있다. 표선초는 몰려드는 학생들로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지경이다. 2025학년도 입시에서 표선고 학생이 최초로 수도권 의대에 합격함으로써 표선을 향한 발걸음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제주대의 변화는 김일환 총장이 주도했다. 김 총장이 거점국립대 유일의 제도를 도입한 건 IB 교육으로 학생들이 변하는 모습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그는 표선고 학생들이 “눈빛이 살아있다”면서 “진정한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라고 했다. 살아있는 눈빛을 가진 학생이 많아지려면 경쟁교육이 완화돼야 하고, ‘친구가 적이 아닌 평생의 동반자가 되기 위한 제도’를 모색한 게 바로 수능 없는 전형이었다.

김 총장이 보지 못한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교사의 권위’다. IB는 서·논술형 절대평가가 특징이지만, IB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더 강화되고 있다. 학생이 교사를 신뢰하고 학부모가 교사를 신뢰하며 교사끼리도 교사를 존경한다. IB 학교에서 이뤄지는 신뢰와 권위는 그저 얻어진 게 아니었다. IB를 관할하는 IBO의 치밀한 관리와 그걸 지키려는 교사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어서 가능했다.

제주대의 마중물이 한국 교육 변화를 추동하는 힘이 되려면 대학들이 움직여야 한다. 다행히 한국 대학 입시는 수시가 주류다. 이미 수시에는 수능의 역할을 축소한 학생부종합전형이 있다. 이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는 개별 대학의 몫이다. 대학의 재량이 상당히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돼 있다.

입시에서 공정은 제1의 가치이지만, 한국 교육은 이 가치만 좇다가 더 큰 걸 잃어버렸다. 공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학생이 성장해 교사를 존경하면 교권 강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K-에듀의 시작은 교사로부터 시작돼야 하고, 그 선봉에 교권 강화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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