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속 맹감처럼 - 이중섭 소설가
2025년 01월 03일(금) 00:00 가가
베란다 문을 열자 찬 공기가 얼굴에 달려든다. 화분 속 호랑가시나무 잎들이 웅크린 채 쳐다본다. 거실 텔레비전에서는 무안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속보로 정신없다. 지난해 막바지에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몇 시간 후에 국회에 의해 해제되었다. 정국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한해를 마감하나 싶더니 막바지에 여객기 사고가 터졌다. 인명 피해가 극심한데 세상이 눈물 흘릴 짬도 없이 빠르다.
멍하니 화분 속의 나무 열매를 본다. 고향 앞산의 맹감이 떠오른다. 어느새 설날이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제 부모가 계시지 않으니 고향 가는 발걸음도 함께 멈췄다. 지난 설날 일들이 꿈처럼 아득하다.
해마다 설날 아침 세배를 마치면 마을 뒷산 납골당으로 향했다. 차례를 마치면 아들과 함께 유자나무가 울창한 밭을 둘러보곤 했다. 바닷가인 고향 마을 밭들은 유자나무로 가득 차 있었다. 유자나무를 자세히 보면 겉보기와 다르게 오래된 나무들이 꽤 많았다. 유자나무 고목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마저 나이 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발길은 앞산 신선바위에 오른다. 사람의 왕래가 없어 억새와 가시나무와 덩굴식물이 무성했다. 가을이면 산딸기로 술을 담으려던 마을 동생이 뱀 때문에 산에 들어가기가 겁난다고 할 정도였다. 수풀이 헝클어진 남녘의 겨울 산은 하얀 마른풀만 유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아빠 이거 뭐야?” 가만히 따라오던 아들이 물었다.
“맹감” 청미래덩굴을 고향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작은 사과 아니야?” 빨간 열매가 꽃사과 열매를 닮기는 했다.
“먹을 수 있어?” 한번 먹어 보라며 웃고 말았다.
어린 시절에는 배가 고플 때 맹감도 훌륭한 군것질거리였다. 한참 씹다 보면 떫은맛이 허기진 우리 몸에 양분이 되었다. 봄날에 씹어대던 삘기도 마찬가지였다. 산새도 날지 않고 마른 잡목만 무성한 농촌의 겨울 숲에는 맹감만이 오직 홀로 빨간 정절을 지키고 있었다.
고향의 겨울 숲에는 그래도 물줄기를 위로 끌어올리는 나무들이 있다. 죽순처럼 한줄기로 자라는 아카시아는 보이지 않게 푸른 숨소리를 공기 속으로 내뿜고 있었다. 조금 튼튼한 줄기를 잘라 칼싸움하던 기억이 새로웠다. 아카시아 줄기는 낫으로 껍질을 벗기면 처음에는 초록 속을 보이다가 다음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하얀 마른나무와는 또 다르게 싱싱한 순백의 나무줄기가 찬 공기 속에 검처럼 빛을 내곤 했다. 겨울 숲에서 가시를 달고 죽죽 뻗는 아카시아를 보면 마치 갑옷에 긴 창을 든 병사가 연상되곤 했다. 사람들은 떠나고, 말 없는 것들만 겨울 숲에서 농촌을 지키고 서 있었다.
마을 뒤 문중 산에 지어진 납골당 지붕에는 검은 기와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시골 집성촌마다 새롭게 지어지는 납골당,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후를 대비한 망각의 집이 볼 때마다 낯설었다. 부모가 저곳에 언제 안착할까 싶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부모 모두 그곳에 자리를 잡은 지 두 해가 넘었다. 나 자신 서울살이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자주 찾지 않는데 내 자식은 또 얼마나 가끔 이곳을 올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앞산을 내려와 마을 뒤편 골목길로 들어섰다. 동네는 휑하니 비어 있는 집들이 많다. 기와집으로 가세가 우렁찼던 큰집은 행랑채가 무너져 있었다. 집 뒤 푸른 대나무도 꽃이 피어 피폐한데 커다란 뱀만 집지킴이로 대나무 울타리를 넘나든다는 소문만 들렸다. 그 아래 섭이네 집터는 이미 시멘트로 덮여 있고, 미국으로 이민 떠난 복이네 집 양철 지붕은 녹이 슬었다. 그 많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몇몇 친구는 어린 나이에 밤하늘에 별이 되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새가 되어 도시로 날아가 버렸다. 시골 풍경이 낯선 데다 너무 심심한 아들이 벌써 서울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바쁜 모양이다.
“아빠! 내 고향 서울에 언제 올라가?”
지난 설날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다시 베란다 화분 속 호랑가시나무를 들여다본다. 거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여객기 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하얀 줄기를 덮는 진초록의 잎 사이로 자잘한 열매가 눈에 띈다. 고향 산속의 맹감처럼 붉다. 아직은 빨갛게 살아 있어야 할 희생자들 생각이 겹치며 눈시울이 뜨겁다. 겨울 눈 속의 마른나무 사이에서도 붉게 빛나던 맹감처럼 살아있는 자들은 매양 그랬던 것처럼 또 묵묵히 걸어야 한다.
해마다 설날 아침 세배를 마치면 마을 뒷산 납골당으로 향했다. 차례를 마치면 아들과 함께 유자나무가 울창한 밭을 둘러보곤 했다. 바닷가인 고향 마을 밭들은 유자나무로 가득 차 있었다. 유자나무를 자세히 보면 겉보기와 다르게 오래된 나무들이 꽤 많았다. 유자나무 고목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마저 나이 든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맹감” 청미래덩굴을 고향에서는 그렇게 불렀다.
“작은 사과 아니야?” 빨간 열매가 꽃사과 열매를 닮기는 했다.
“먹을 수 있어?” 한번 먹어 보라며 웃고 말았다.
어린 시절에는 배가 고플 때 맹감도 훌륭한 군것질거리였다. 한참 씹다 보면 떫은맛이 허기진 우리 몸에 양분이 되었다. 봄날에 씹어대던 삘기도 마찬가지였다. 산새도 날지 않고 마른 잡목만 무성한 농촌의 겨울 숲에는 맹감만이 오직 홀로 빨간 정절을 지키고 있었다.
고향의 겨울 숲에는 그래도 물줄기를 위로 끌어올리는 나무들이 있다. 죽순처럼 한줄기로 자라는 아카시아는 보이지 않게 푸른 숨소리를 공기 속으로 내뿜고 있었다. 조금 튼튼한 줄기를 잘라 칼싸움하던 기억이 새로웠다. 아카시아 줄기는 낫으로 껍질을 벗기면 처음에는 초록 속을 보이다가 다음에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하얀 마른나무와는 또 다르게 싱싱한 순백의 나무줄기가 찬 공기 속에 검처럼 빛을 내곤 했다. 겨울 숲에서 가시를 달고 죽죽 뻗는 아카시아를 보면 마치 갑옷에 긴 창을 든 병사가 연상되곤 했다. 사람들은 떠나고, 말 없는 것들만 겨울 숲에서 농촌을 지키고 서 있었다.
마을 뒤 문중 산에 지어진 납골당 지붕에는 검은 기와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시골 집성촌마다 새롭게 지어지는 납골당, 살아 있는 사람들이 죽은 후를 대비한 망각의 집이 볼 때마다 낯설었다. 부모가 저곳에 언제 안착할까 싶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부모 모두 그곳에 자리를 잡은 지 두 해가 넘었다. 나 자신 서울살이에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을 자주 찾지 않는데 내 자식은 또 얼마나 가끔 이곳을 올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앞산을 내려와 마을 뒤편 골목길로 들어섰다. 동네는 휑하니 비어 있는 집들이 많다. 기와집으로 가세가 우렁찼던 큰집은 행랑채가 무너져 있었다. 집 뒤 푸른 대나무도 꽃이 피어 피폐한데 커다란 뱀만 집지킴이로 대나무 울타리를 넘나든다는 소문만 들렸다. 그 아래 섭이네 집터는 이미 시멘트로 덮여 있고, 미국으로 이민 떠난 복이네 집 양철 지붕은 녹이 슬었다. 그 많던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몇몇 친구는 어린 나이에 밤하늘에 별이 되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새가 되어 도시로 날아가 버렸다. 시골 풍경이 낯선 데다 너무 심심한 아들이 벌써 서울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바쁜 모양이다.
“아빠! 내 고향 서울에 언제 올라가?”
지난 설날의 추억을 떠올리다가 다시 베란다 화분 속 호랑가시나무를 들여다본다. 거실 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여객기 사고 소식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하얀 줄기를 덮는 진초록의 잎 사이로 자잘한 열매가 눈에 띈다. 고향 산속의 맹감처럼 붉다. 아직은 빨갛게 살아 있어야 할 희생자들 생각이 겹치며 눈시울이 뜨겁다. 겨울 눈 속의 마른나무 사이에서도 붉게 빛나던 맹감처럼 살아있는 자들은 매양 그랬던 것처럼 또 묵묵히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