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동화] 터치! - 수이레
2025년 01월 02일(목) 20:00

그림 남정숙 ▲호남대 미술학과 석사 졸업 및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과정 수료 ▲대한민국 인물대상 문화예술부문 대상 ▲전라남도 미술대전 특선 ▲광주가톨릭미술작가회 정기전 등 다수 단체전

클라이밍 센터의 문이 열렸다. 커다란 창문에서는 환한 빛이 쏟아졌고, 여기저기에서 구호 소리가 들려왔다. 희미한 땀 냄새, 경쾌한 음악 소리. 새로 생긴 곳이라 그런지 모든 게 깔끔했다. 학교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처음 왔니? 이름이 뭐야? 몇 학년?”

“한승미요. 지금 6학년이에요.”

밖에서 구경만 할 생각이었는데…. 엄마가 알면 분명 화내겠지?

“어서 들어 와. 승미는 운동 좋아해?”

‘운동’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였으니까.

“클라이밍은 벽이나 인공 암벽을 타고 올라가는 운동이야. 장비 갖추고 안전하게 하는 거라 크게 위험하지는 않아. 요즘은 어린이들도 많이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생님을 따라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학교 강당만큼 높은 벽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사이로, 몸에 안전장치를 단 두 아이가 보였다. 갑자기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그 애들이 빠르게 벽을 기어 올라갔다.

“저건 ‘스피드 클라이밍’이라고 해. 누가 더 빨리 올라가는지 겨루는 운동이야.”

나는 눈으로 그 애들을 쫓았다. 손발이 보이지 않는 엄청난 속도! 그건 마치 굶주린 도마뱀이 먹이를 쫓는 모습 같았다. 순간, 한 아이가 벽 끝에 달린 빨간 터치패드를 눌렀다. 불이 확 켜지더니 따가운 함성이 쏟아졌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가슴 속에서 뜨거운 폭죽이 터져 나왔다. 나도 해보고 싶다. 저 위로 올라가 빨간 터치패드를 눌러보고 싶어졌다. 생각이 한번 물꼬를 트자, 머릿속이 금세 시끄러워졌다. 그러다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내가 하고 싶은 건 뭐든 안 된다고 한다. 운동도 안 되고, 위험한 행동도 하지 말고, 얌전히 학원이나 다니라고 했다. 내가 다칠까 봐 그러냐고? 설마, 공부할 시간을 뺏길까 봐 그런다면 몰라도. 나는 온몸에 땀이 나도록 움직이고 싶다. 머리카락이 바짝 서는 긴장감이 좋다. 엄마가 원하는 거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열세 살 쯤 됐으면 그럴 수도 있잖아?

그때, 선생님이 뭔가를 내밀었다.

“자, 이거 무료 체험 쿠폰이야. 다음에 부모님하고 같이 와.”

나는 쿠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맞다. 열세 살은 그래도 되는 나이이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엄마부터 찾았다.

“엄마! 나 클라이밍 센터 다닐래. 학교 앞에 새로 생겼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던 엄마가 얼굴을 내밀었다.

“클라이밍? 암벽 등반?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지 알아? 절대 안 돼.”

“안 위험해. 내가 보고 왔다니까? 몸에 안전 장비 다 달고 하는 거야. 응? 엄마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하필 그런 걸, 지금 다니는 학원이나 제대로 다녀.”

엄마는 인상을 찌푸리며 화장실 문을 닫았다. 거실 벽에 걸려 있던 외할아버지 사진이 덜컹 흔들렸다. 이럴 줄 알았어….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천장에 빨간 터치패드가 어른거렸다. 그 애들처럼 팔을 쭉 뻗었다. 침대 옆 벽을 세게 내리치자, 손바닥에 ‘찌릿’하고 전기가 흘렀다. 뭐지? 운명의 자석이 통과한 것 같은 이 기분은? 주머니에서 쿠폰을 꺼냈다. 가슴이 또 뛰었다. 나는 조용히 휴대폰 단축키를 눌렀다.



다음 날, 학원을 빠지고 클라이밍 센터에 갔다. 물론 엄마에겐 비밀이다.

“승미 왔구나?”

선생님이 내 옆에 서 있는 아빠를 보고 가볍게 인사 했다.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가 알면….”

내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자, 아빠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빨리 가게 들어가 봐야 한다며, 얼른 가세요. 이따 집에서 봐요.”

나는 아빠를 돌려보내고는 선생님 뒤를 바짝 쫓아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화려한 벽이 나타났다. 어른 몸집만큼 큰 노란 돌덩이가 붙어 있기도 하고 알록달록한 작은 돌들이 천장 끝까지 붙어 있기도 했다. 더 들어가자,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두툼한 매트 위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그 아이들과 함께 준비 운동을 하고 기본 용어를 익혔다. 올라가는 것 보다 떨어지는 게 중요하다며, 안전하게 떨어지는 기술도 배웠다.

벽에 붙은 색깔 돌은 ‘홀드’라고 했다. 주먹만 한 크기에 안쪽이 움푹 패여 있어서 손가락으로 잡기 편했다. 선생님이 벽 앞에 서서 시범을 보여주었다.

“자, 두 손을 모으고 눈앞에 있는 홀드 하나를 잡아. 그 다음 두 다리를 바깥쪽으로 벌려 앉는 거지, 개구리처럼. 발끝을 홀드에 올리고 무릎을 펴면서 일어나. 옳지! 이제 내가 갈 방향으로 팔을 뻗고, 홀드 잡고, 이동. 와, 승미 잘 하는데?”

선생님이 나를 쳐다보자 다른 아이들도 나를 흘금거렸다.

“승미는 한번 위로 올라가 볼까? 저 위에 파란 홀드를 터치하고 오면 돼. 자, 홀드 잡고, 방향 보면서 팔 뻗고, 발 옮기고. 그렇지!”

나는 선생님이 지정해주는 홀드를 따라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위로 올라갈수록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목이 뻣뻣해졌다.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내가 잡으려는 홀드가 더 잘 보였다. 엄마에게 들킬 걱정도, 아빠의 알 수 없는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알록달록한 홀드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손가락에 더 힘을 주었다. 홀드를 잡은 오른손이 금세 축축해졌다. 얼른 왼손으로 바꿔 쥐고 오른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그 다음, 파란 홀드를 향해 오른팔을 뻗었다.

“어?”

손가락이 홀드에 닿지 않았다. 오른팔이 허우적대자 발끝이 흔들렸다.

“그만하면 됐어. 천천히 내려와. 내가 보고 있을게.”

선생님이 팔을 벌렸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학원에 빠진 걸 엄마가 알면 다시는 여기 못 올 수도 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기회를,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파란 홀드를 노려보며 오른팔을 힘껏 던졌다.

“터치!”

구경하던 아이들이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머릿속에 탄산이 터진 것 마냥 온몸이 짜릿했다.

“운동 신경이 아주 좋은데? 체력도 좋은 것 같고.”

“외할아버지 닮았나 봐요. 산악인이셨대요. 에베레스트에서 찍은 사진도 있어요.”

나는 밑으로 내려와 바닥에 깃발 꼽는 시늉을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집에 갈 시간이었다.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팔도 무겁고 다리도 뻐근했다. 그런데도 홀드를 쥐었던 감각이 자꾸 생각났다. 또 하고 싶다. 더 잘 해서,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고 싶다. 그러려면 엄마를 설득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몰래 다닐 수는 없었다.

“한승미.”

갑자기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너 어디 갔다 왔어? 아빠가 무슨 얘기 하는 거야?”

망했다. 아빠를 믿었는데…!

“어? 그, 그게 무료 체험 쿠폰이 생겨서…. 벽도 튼튼하고 바닥도 푹신하고….”

“그러니까, 학원 빠지고 지금 클라이밍 센터에 갔다는 거야? 안 된다고 했는데도?”

나가려는 엄마를 재빨리 붙잡았다.

“내가 잘못했어, 엄마. 말 안 하고 가서 미안해.”

“엄마는 위험한 게 너무 싫어! 엄마가 싫다는데, 그걸 꼭 해야 돼?”

엄마 목소리가 커졌다.

“내가 해보니까 진짜 안전했어. 안 다치게 노력할게. 그러니까 엄마아. 응?”

싸늘하게 돌아선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하아…, 이게 아닌데. 나는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여전히 안방은 닫혀 있었고 엄마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아빠가 멋쩍은 듯 내 손에 사탕 하나를 쥐어주었다.

“미안해. 아빠도 어쩔 수 없었어.”

사탕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초콜릿이 더 좋은데….

“이거, 엄마 나오면 주세요.”

밤새 쓴 편지를 아빠에게 건넸다. 클라이밍을 하고 싶은 내 마음과 다시는 학원에 빠지지 않겠다는 약속의 편지였다.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저녁이 되자, 그제야 엄마가 얼굴을 보여주었다.

“엄마는 진짜 그런 거 싫은데, 너 하는 거 봐서 생각해 볼 거야.”

다행이다. 어제보다 엄마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나는 엄마 마음을 돌리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학원도 빠지지 않고 숙제도 밀리지 않았다. 학습지도 빼먹지 않았다. 밤에는 틈틈이 클라이밍 동영상도 찾아보았다. 나보다 어린애들이 십 미터도 넘는 벽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그것도 엄청 빠른 속도로! 언젠간 나도 저 앞에 설 수 있겠지? 나는 스무 번도 넘게 동영상을 돌려보았다.



일주일이 지났다. 엄마 마음은 좀 변했을까? 가끔 내 방을 훔쳐보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해서 잘 모르겠다.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거실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응, 그래. 우리도 그 학원으로 할게. 알았어.”

나를 보고는 서둘러 끊는다. 찜찜한 기분, 예감이 좋지 않다.

“무슨 학원?”

“너! 밤에 동영상을 너무 많이 보는 거 아니야?”

“무슨 학원이냐고! 나 하는 거 봐서 클라이밍 센터 보내 주는 거 아니었어?”

내가 목소리를 높이자 엄마 눈이 날카로워졌다.

“너 하는 거 보니까 안 되겠어서 그래. 다음 주부터 과학 학원 다닐 거야.”

손끝이 차가워졌다.

“이러는 게 어디 있어? 엄마, 나 속인 거야?”

“뭘 속여? 네 행동을 생각해 봐. 내년이면 중학생인데 늦게까지 동영상이나 보고! 다른 애들만큼은 못해도 뒤쳐지진 말아야 할 거 아니야. 엄마 말이 틀렸어?”

숨이 막혔다. 나도 모르게 몸에 힘이 들어갔다.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데, 클라이밍? 그 위험한 걸 왜 해?”

“안 위험하다고 몇 번을 말해? 엄마가 가 봤어? 가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탁! 가방을 내팽개쳤다.

“무슨 짓이야!”

“내 말을 왜 안 믿어?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워? 언제 내가 학원 보내달라고 했어? 다 엄마가 하라니까 가는 거잖아. 클라이밍, 그거 딱 하나 하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이야?”

엄마가 불같이 화를 냈다.

“안 돼. 절대 안 돼!”

“그러니까 왜! 왜 안 되냐고!”

“네 외할아버지도 그랬어!”

갑자기 정신이 멍해졌다.

“외할아버지도! 산에 갈 때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 위험하지 않다고. 그런데 돌아오지 않았어. 너도 그러면 어떡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나는 벽에 걸린 사진을 돌아보았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깃발을 꽂은, 젊은 시절의 외할아버지가 보였다.

“엄마, 난 외할아버지가 아니야.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 나 진짜 하고 싶어.”

나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한 걸음 물러선 엄마가 뒤로 돌아섰다. 엄마의 한숨 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늦은 밤, 아빠가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가 나만했을 때 겪은 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엄마가 했던 말들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넌 외할아버지를 닮은 것 같아. 아무도 그 고집을 꺾을 수 없었대. 물론 엄마도 외할아버지를 닮았지.”

아빠가 피식 웃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기대어 안방 문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왜 한 번도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 우리는 가족이잖아. 그랬다면, 엄마를 덜 미워하고 더 많이 안아줬을 텐데….



며칠째 집이 조용하다. 엄마는 내 눈을 피했고 나도 엄마와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했다. 그렇다고 학원을 빼먹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한 약속이니까, 엄마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그것만은 꼭 지키고 싶었다.

학원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었다. 가지런히 정리 된 책상 위에 초코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나는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안방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만 같았다.

밤에 클라이밍 동영상을 보는데, 엄마가 문을 두드렸다. 쭈뼛거리며 들어오더니 빈 그릇 옆에 클라이밍 전단지를 내려놓았다.

“갔다 왔어, 거기. 안전하게 잘 해놨더라. 한 달만 다녀 봐.”

“…뭐?”

“대신, 다치면 그날로 끝이야.”

엄마는 더 할 말이 남았는지 자꾸만 입술을 오물거렸다.

“저번에는 미안했어.”

그러고는 번개처럼 방을 나간다. 지금… 엄마가 허락한 거 맞지? 그렇지? 나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침대에 올라가 베개를 마구 두드렸다. 가슴 속에서 또 한 번 폭죽이 터져 나왔다.

“아, 진짜. 엄마아!”

나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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