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유해도서 낙인 찍고 폐기하는 것 가슴아팠다”
2024년 12월 07일(토) 00:30
한강 작가 스톡홀롬서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 간담회
“‘채식주의자’는 폭력의 완벽한 거부가 가능한가 묻는 소설”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강 작가. /연합뉴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언어의 특성 자체가 강압적으로 막는다고 해서 잘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강은 6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들의 언론의 자유는 어떤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정확히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언어의 특성 자체가 강압적으로 막는다고 해서 잘 되는 건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계속해서 말해지는 진실이 있을 것이고 언어의 힘은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지난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한국에서 ‘채식주의자’가 10대나 일부 학생들에게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부모들, 도서관에서 없애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물음이었다.

이에 대해 한강 작가는 “‘채식주의자’는 지난 2019년 스페인 고등학교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 고등학교 문학교사들이 추천도서 목록을 만들어 읽히고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채식주의자’가 선정됐다”며 “스페인어로 번역한 윤선미선생님과 함께 산티아고에 가서 학생들과 토론하고 시상식을 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굉장히 학생들이 깊게 생학하고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와 견주어 한강 작가는 한국의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생각했을 때 문화적 차이도 있고, 한국에서는 조금 어렵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낭독회를 할 때 가끔 고등학생들이 ‘채식주의자’를 내밀며 싸인요청을 할 때 나중에 읽고 ‘소년이 온다’를 먼저 읽으라고 말한다”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작가는 앞서 개인적인 생각 외에도 ‘채식주의자’가 받고 있는 오해들에 대한 해명도 했다. 그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제목부터 아이러니하며 주인공을 지칭하는데 주인공은 단 한번도 자신을 채식주의자라고 지칭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강은 “이 소설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주인공은 말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철저하게 주인공이 대상화돼 그려진다. 오해받고, 혐오받고, 욕망받고, 동정받으며 완벽한 객체로서 다뤄진다. 이 구조 자체가 책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설 속에는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문학적 장치가 있다. 첫 번째 화자가 가장 신뢰할 수 없고, 두 번째, 세 번째도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야기를 할 때 아이러니가 발생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읽으면 흥미가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를 굉장히 고통스럽게 공감하며 읽어주시는 분이 많고 오해도 받는데 그것이 이 책이 운명”이라면서도 “소설에 유해도서라는 낙인을 찍고 도서관에서 폐기를 하는 것이 가슴아팠다”고 언급했다.

지난 몇 년간 도서관에서 폐기되고 열람 제한이 됐던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비쳤다. 그는 사서 교사들의 권한이 중요한데 자꾸 이런 일(폐기나 열람제한)이 생기면 자기검열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한강은 “책은 중요한 존재이고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공존하며 다른 이를 이해하는 법, 다양한 사람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면서 “성숙한 자세와 인문학적 토양의 토대가 도서인데, 사서 교사들 권한을 잘 지켜주는 사회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작가는 채식주의자의 의미와 메시지, 노벨상의 의미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이 소설은 여러 레이어(층위)를 갖고 있다. 일단은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인간이 완벽하게 폭력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질문하고 있다”며 “어떤 사람이 폭력을 거부하려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그녀를 둘러싼 세계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더듬어 보았다”고 했다.

또한 “무엇이 정상이고, 관계인가 라는 문제도 있는데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따라 가는 독자들은 ‘정말 이상한 인물이야’ 하고 생각하며 읽을 수 있다”며 “그런데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나면 누가 더 이상한지,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이 이상하지는 않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소설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가족들이 영혜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는 부분을 꼽았다. 무엇이 정상이고 관계인가 질문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영혜라는 인물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앞으로 전진하는 인물”이라며 “여러 레이어(층위)가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으며 무엇을 거부한다는 것에 대한 질문의 의미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이 ‘채식주의자’는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부연했다.

한강은 수상 소식 이후 불편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한달 넘게 생각해보니 이 상은 문학에게 주는 상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편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다시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 노벨 주간에 많은 일정이 있는데 노벨 주간을 즐길 것이다. 국립 도서관도 방문할 것이고 스톡홀름 도시 구석구석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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