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산 시인 “문학은 사회 질서 묻는 삐딱한 언어”
2024년 11월 27일(수) 20:50
목포 출신… 시집 발간
‘거푸집의 국적’ 사회 비판 등 담아
고 황현산 평론가와 형제 평론가
“평론보다 시 쓰는 일 더 어려워”
흔히 형만한 아우가 없다고 한다. 동생이 형을 능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형 못지않은 아우도 있고, 형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인정을 받는 동생도 있다.

문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문학은 장르의 특성상 자신만의 창작세계를 열어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누구 작품이 좋은가라는 측면보다 각자 개성적인 창작세계를 펼쳐나간다는 것이 중요하다.

목포 출신 황정산<사진> 평론가가 시집 ‘거푸집의 국적’(상상인)을 펴냈다.

시인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고(故) 황현산 평론가(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의 동생이다. “프랑스 문학 작품과 문학 이론에 해박한 지식을” 소유했던 황현산 동생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형은 문학과 글쓰기에 평생을 바친 분이었어요. 항상 한밤에 일어나 새벽까지 글을 쓰셨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건강을 해친 게 아닌가 합니다. 형은 자신의 글의 미학과 논리를 아주 중요시하는 분이었죠. 작품의 예술성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계셨고 그것을 논리적 언어로 바꾸어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아주 큰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형의 모습은 글을 쓰는 데 있어 엄격했다. “이론을 남발하는 그런 글쓰기를 아주 싫어했다”는 말에서 보듯 황현산 평론가는 문학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숙고한 듯 했다.

이번에 시집을 펴낸 황정산 시인은 지난 1993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평론을 써왔고 2002년부터는 ‘정신과 표현’에 시를 발표하며 시 창작도 했다. 이번 시집은 20여 년 만에 묶어낸 것으로 오랜 기간 시적 여정이 갈무리돼 있다.

그는 “평론을 하다 늦은 나이에 시인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어린 시절부터 시를 써왔다”며 “목포에서 학교 다녔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시를 써서 많은 백일장 대회에서 입상한 경험이 있다. 어느 날 문득 다시 시가 쓰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지금껏 평론을 써왔지만 “평론은 온전히 나의 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다른 사람의 작품에 기대 쓰는 글이기 때문인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거푸집의 국적’이라는 시집 제목이 암시하듯 시인은 다양한 시와 시적 존재들을 시집 형식의 ‘거푸집’에 담아낸다. 황 시인은 주제와 경향에 따라 몇 개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디스토피아로서의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을 비롯해 하찮게 버려진 사물, 소외된 자들의 삶을 은유한 작품들이다. 또한 언어의 새로운 의미를 탐색하는 시도 있다.

이번 시집에 대해 시인인 김효은 평론가는 “시인이 던지는 질문들, 명령어들, 수수께끼 같은 시편들에 독자들은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과 답변과 반박을 새롭게 내놓을 수 있다. 이 시집은 잠겨 있는 형식으로 열려 있다”고 평한다.

현재 ‘불교문예’, ‘상상인’ 주간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황 시인은 “모든 삶이 글 쓰고 책 만들고 하는 데 바쳐지고” 있을 만큼 문학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사실 시와 평론은 전혀 다른 영역인데 그는 두 장르를 병행하고 있다. 논리적 이성적 사고, 감성적 사유가 엇갈리는 지점이다.

“평론을 쓰기 위해 많은 시를 읽을 때 시인들이 참 시를 못 쓴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오만한 생각이었죠. 하지만 막상 시를 써보니 제가 못 쓴 시라 생각한 작품들도 쓰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시를 써서 새로운 말을 창조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소수자의 언어’다. 법률 사전이나 도덕 교과서 같이 사회가 요구하는 질서나 가치를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고 한다. “그런 질서가 바람직한가를 묻는 삐딱한 언어”라고 언급한다.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밀려났거나 억압받거나 스스로 물러난 소수자만이 가능하다”는 말에서 그가 지향하는 문학의 가치가 가늠이 된다.

향후 계획을 물었더니 목포 출신답게 그는 목포 문학을 이야기했다. 앞으로는 고향인 목포의 문학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최근 목포 문학박람회나 김현축전 등을 통해 목포 문학의 융성을 다시 일으키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에 동참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에요.”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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