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담 시인 “노년과 죽음, 삶의 시간 바라봤죠”
2024년 11월 20일(수) 19:40
네번째 시집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는…’ 발간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 역임
“문학은 인생의 동반자…글 쓰는 삶 풍요”

이지담 시인

“죽음과 노년의 시간, 다양한 삶을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얼마 전 오랜 기간 저희 부부와 동고동락했던 분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냈어요. 자연스레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지담 시인이 최근 시집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는 흔들려서 좋았다’(문학들)를 펴냈다. 제목이 은유하는 깊은 사유와 철학적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출판 계기를 묻는 물음에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분과 동행한다는 마음으로 이번 작품집을 발간했다”고 했다.

4년 만에 네 번째로 펴낸 시집은 울림과 차분함, 깊이를 배면에 깔고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당신의 뒷모습을 보고 슬픔으로 옷을 지어 걸어두었더니 가을 들판에서 펄럭인다. 가시는 길 환해질까. 시 편이 동행한다”고 시를 읊조리듯 말했다.

평소 차분하면서도 다른 이를 배려하는 성품이라 ‘누군가를 떠난 보낸 아픔’이 어떠할지 가늠이 됐다. 문학 행사장이나 출판기념회에서 봐왔던 시인은 ‘있는 듯 없는 듯’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었다.

나주 출신의 이 시인은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을 역임하며 지역 문학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광주전남작가회의는 회원이 360여 명 정도 되는 지역의 대표 문학단체다. 오월문학제를 비롯해 ‘작가’지 연 2회 발간, 섬진강문화학교, 문학기행 등을 진행했다.

“특히 ‘작가’지는 임원들과 의견을 모아 신작으로 꾸리고 원고료를 지급해 작가들 자존감을 높이도록” 추진했던 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정당한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은 작가를 예우하는 첫걸음일 것이다.

그는 작가회의 활동을 하면서 시와 삶, 시와 현실에 대한 생각을 하곤 했다. “오롯이 작품에만 열중할 수 있는 작가는 소수”라며 “대부분 직장생활 등과 병행해 창작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작가회의 회원은 작가들과 서로 연대하고 다양한 행사를 통해 교류하면서 발전한다. 기본적으로 창작은 끊임없는 성찰로 자기와의 싸움이다”면서도 “동료 작가들의 모습이 거울이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것이 작가의 정체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이 시인은 시와 동시의 경계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 지난 2014년 제22회 ‘대교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상 동시부문 최고상을 수상했다. 동시집 ‘낙타 가족’, ‘고민에 빠진 개’를 발간하는 등 아이들의 마음을 담아내는 데도 주력했다.

사실 동시를 쓰는 일은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마음이 정화됐을 때 시적 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말에서 동시 쓰기가 시 쓰기보다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어떻게 소재를 취사선택하느냐는 물음에 “모티브나 주제에 따라 시 그릇, 동시 그릇에 담을 작품이 달라진다”는 말이 돌아왔다.

이번 시집은 어린이의 마음, 철학자의 마음, 시인의 마음 등이 투영됐다. 사물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깊고 따스하다.

“바위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믿는 때가 있었다// 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 말 없는 피가 중심을 잡고 있었다//(중략)// 언제부턴가 깨부숴야 하는 이 단단한 생각들/ 비탈을 굴러 내려가/ 들판의 부드럽고 말랑한 흙을 그리워하다가/ 바위를 묶거나 반으로 가르는 나무뿌리를 보았다”

위 시 ‘바위’는 표제 ‘바위를 뚫고 자란 나무는 흔들려서 좋았다’를 떠올리게 한다. 한때는 “바위의 피를 물려받았다고 믿는 때”가 있었지만 바위를 뚫고 자란 것은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약함이 강함을, 부드러움이 굳셈을 이긴다는 역설의 진리다. “뿌리와 바위를 하나로 묶는 건 부드러운 흙”이었음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는 글을 씀으로써 삶이 풍요로워지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나이 듦이 외롭고 초조하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문학은, 시는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제 삶의 동반자이지요. 이 세상에 잠깐 다니러 왔다가 가는 삶이지만 삶과 죽음의 본질을 사유한 작품으로 이웃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고 봅니다.”

한편 이 시인은 2003년 ‘시와 사람’, 2010년 ‘서정시학’ 시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고전적인 저녁’, ‘자물통 속의 눈’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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