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갱신되는 문장, 여든 아홉살 광주극장- 이서영 시인·광주극장 코디네이터
2024년 10월 30일(수) 00:00
광주극장은 매해 개관영화제를 개최하며 나이를 센다. 올해는 89주년째다. 아마 이 숫자를 본 순간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것이다. 이것은 역사를 인과적으로 배치하며 극장이라는 대상을 사람에 가까운 무엇인가로 판단했을 때 작동하는 연상이다. 역사를 누적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러한 누적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에게 이 숫자는 다소 과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이 숫자를 과한 것이 아니라 놀라운 것으로 판단했을 때 가능한 일들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89주년이라는 숫자가 놀라운 이유는, 어떤 영화의 제목처럼 ‘무너지지 않는다’(2024, 김귀민)는 의지와 분투가 견인해온 시간만을 뜻해서가 아니다.(그것은 사실 인간의 절실한 마음의 영역에 속한 일이다.) 물론 이곳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내게도 광주극장이라는 장소는 여전히 기이하고 놀라우며, 마치 어떤 역사의 형식(혹은 진행방식)을 건축으로 시각화한 곳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결국 이것은 인간의 시선과 비유를 기반으로 둔 것이다. 어떠한 공간에 나이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것에 인칭을 부여하고, 특정한 문장들을 끌고 나갈 주어로 삼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또한 그 주어가 구술할 수 있는 미래의 기록에 대한 믿음을 은연중에 갖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위의 단락에서 기술이 아니라 구술이라고 표현한 이유 역시, 공간에 목소리가 깃들기를 바라는 지독히 인간적인 염원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사실 극장이라는 곳은 잠처럼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비어있는 스크린, 물리적 건축으로서의 극장 말이다.

영화제는 대개 축제가 그렇듯이, 다양한 소리를 의도적으로 파생하는 일이다. 소리는 언제든지 ‘목소리’에 가까워질 수 있고, 그것들은 서로 이어지거나 겹쳐지는 과정 안에서 마치 교차로와 가까워지며 특정한 큐레이토리얼을 구성한다. 혹은 끝없이 범람하는 문장처럼 우리의 의도와 무관하게 알 수 없는 영역으로까지 흘러간다. 광주극장에서 진행되는 개관영화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탁월하다. 시민들과 함께 제작한 손간판을 올리고, 연계 토크와 콘서트를 진행하는 일들이야말로 일종의 축제에 가깝기 때문이다.

결국 공간에 소리를 얹는 과정은 믿음과 두려움, 모종의 두근거림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고요한 풍경을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인간은 무성영화라는 깊고 고요한 영역에 음향을 얹고, 극장이라는 시공의 형식을 지어 사람의 일들이 깃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제야말로 사실 구술에 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극장’이라는 단어가 광주라는 지역에서 어떤 주어가 될 수 있는지, 이 지면 안에 충분히 설명할 재간은 없지만, 결국 영화제라는 것은 극장을 주어로 삼고 이어지는 술어들의 연쇄와 집합이 된다.

끝나지 않는 기록, 갱신되는 문장, 미완성의 책. 이런 이미지들이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이유 역시, 이곳이 계속될 것이라는 현저한 믿음을 동료 혹은 관객에게서 확인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극장은 사실 인간의 일들과 유관하게, 동시에 무관하게 여전히 이곳에 있다.

사실 어째서 이곳이 놀라운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직 있고, 여전히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 같기에 놀라운 것이다. 계속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정말로 계속될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일종의 길항작용을 느낀다. 그것은 1)역사의 누적, 2)그 역사의 누적에 저항하는 새로운 기록이 동시에 파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삶과 기록이 동시에 흘러가는 일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 지점에서 광주극장은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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