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전, 란
2024년 10월 25일(금) 14:20
<18>넷플릭스 2주 연속 1위, 글로벌 TOP 3위
강동원, 차승원, 박정민 등 스타배우 총출동

지난 11일 넷플릭스에서 영화 ‘전, 란’이 개봉했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선조가 피난 행렬에 오르자 분노한 백성들이 궐기해 경복궁을 불태우는 장면.

화마 속 궁궐은 봉고파직당한 양반의 풀린 머리채로 다가온다. 궁(宮)을 받드는 게 선비의 갓머리(宀)가 아니라 백성의 무수한 등뼈(呂)는 아닐지.

불타는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뒤로한 선조를 보니 떠오르는 상념들이다. ‘송와잡설’ 중 임란 기록에 따르면 백성을 외면하고 피난길에 오른 데 분개한 이들이 불씨를 지폈다고 한다.

그 불길은 일천즉천, 양안과 호적 등 허울뿐인 조선의 제도가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소수 특권층은 귀천의 기준을 재단했고 인간 존엄마저 훼손했다. 한 시대가 얼마나 많은 상실과 절망, 야만을 감내했는지 가늠조차 어렵다.

궁궐의 권위와 표상성에 집착하는 선조 역을 맡은 차승원 배우(오른쪽). 광인의 면모와 메소드 연기로 관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그에게서 영화 ‘서울의 봄’ 전두광(황정민 분)이 겹쳐 보인다.
이런 시퀀스를 담은 영화 제목으로 ‘전, 란’이 적절해 보인다. ‘전란’이 아니라 ‘전’과 ‘란’의 병렬이다. 임진왜란과 민중의 난을 표상하는 두 단어는 둘이자 하나, 역사적 비극의 병치은유다. 외침과 내부 균열이 교호적으로 16세기 조선사를 이뤘기 때문이리라.

지난 11일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김상만 작 ‘전, 란’은 글로벌 차트 TOP3에 진입하는 한편 국내 2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면서 흥행 가도에 올랐다. 주연 배우로 차승원, 강동원, 박정민 등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해 작품성 측면에서도 큰 기대를 모았다.

작중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외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매맞이 몸종 천영(강동원)은 서사를 끌고 나가는 주역들이다. 주변인을 페이드 아웃하고 두 사람의 삶을 포커싱해 몰입감을 준다.

동년배인 둘은 성장 과정에서 신분제의 한계를 초월해 교유한다. 무예에 재능이 있던 천영은 종려 대신 무과에 응시해 장원 급제를 안겨주고, 종려는 그를 인간적으로 대우한다. 실제로 선조 때 대궐 안에서 보는 정시(庭試)에서 응시자를 쫓아 온 하인이 답안을 대필해 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앞에 전란의 구름이 드리웠으나, 선조들이 마주한 것은 신분제의 폐단으로 인한 내분이었다.
허나 두 사람은 전란이 빚은 오해로 평행선상을 달린다.

임란이 발발하고 민중이 봉기하자 선조(차승원)를 보필하던 종려는 ‘노비들이 주인을 죽이고 집을 불태운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천영은 종려와 의리를 지키고 그의 식솔을 지키려 하나, 항간의 왜곡된 소문으로 종려는 격노한다.

민란의 근심과 왜적의 환난… 촛불 앞 조선과 주인공들의 명운을 묘사하기에 내우외환이야말로 적절한 표현이다. 풍신수길을 비롯해 도깨비 탈을 쓰고 백성을 위협하는 왜장 겐신(정성일)의 존재도 위협적이다.

메인 캐릭터의 감정선이 모두 설득력 있는 까닭에, 관객들은 선악 구분에 있어 판단 중지(Epoche)에 빠진다. 마치 영화 ‘쟝고’나 ‘석양의 무법자’처럼 60~70년대 유행한 스파게티 웨스턴 스타일을 오마주, 말미의 검투씬에서는 선악 무화 속에서 인물들의 분투만을 접사로 보여준다.

지독한 운명 앞에서 분기탱천한 주역들의 ‘격돌’
막역했던 주인공들의 운명을 뒤튼 ‘빌런(악역)’이 기실 통치구조와 신분제 한계였다는 점에서 영화는 조선의 ‘정치성 과잉’을 사유케 한다.

물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국가는 정치성 위에 놓인다. 니체는 사회에 지배와 피지배 논리가 실존하며, 삶이 지배자의 논리에 맞춰져야 정의와 선이 살아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런 보수적 철학사를 톺아보더라도 영화에 드리운 조선의 정치성은 ‘과했’다. 특권층의 지배구조 양산을 위해 피지배층의 고통을 합리화한 점도 성리학의 폐단으로 보인다. 이런 연유에서 천영이 ‘청의 검신’이 돼 노도처럼 일어난 것. 그의 모습은 인간 도덕 적행의 기준을 실재가 아닌 관념과 사변, 추상에 끼워 맞춘 시대착오의 페이소스다.

천자수모법, 노비종모법, 양천교혼 등 그 형태도 다양했던 악순환의 굴레는 조선 중엽대 와서 끊어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도 기득권을 놓고 ‘지배 구조’를 존속하려는 이들의 실존은 영화에 투사된 통시적 비극으로 읽힌다.

작 중 선조는 피난 중 부실한 수라상을 받고 광기에 휩싸여 진노한다. 열연하는 배우들의 모습이 담긴 ‘메이킹 필름’
과감한 플래시백을 통해 과거와 현재 시점을 교차 전개한 점이나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 개성 있는 선조를 재창조한 점은 작품에 역동성을 불어넣는다. 판소리와 창, 락을 오가는 ‘Uprising’, ‘Action’, ‘Funeral’ 등 국악 OST도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다만 대규모 전쟁씬보다 2~3인 결투에 주목한 터라 스케일의 아쉬움도 언급된다. 호쾌한 검술 액션활극과 디테일한 감정선 묘사를 버무려 한계를 극복하려는 흔적도 보이나, 300억 제작비에서 임란이 주는 왜군의 ‘압도적 공포’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기대에 못 미치는 면도 있을 것이다.

전(戰), 쟁(爭), 반(反), 란(亂)으로 구성된 총 네 개 장막에서 2~3장에 등장하는 시민군 서사는 소폭 줄여도 좋겠다. 쟁투 이후의 소동극 씬 또한 마찬가지다. 소규모 전투 시퀀스를 지향하는 내내 전쟁의 ‘폭발력’이 부족하기에, 주역 외 개인 서사의 곁가지를 과감히 쳐도 좋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