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추어리에서 만난 동물과 사람들…아름다운 돌봄과 존중
2024년 10월 25일(금) 00:00 가가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동물의 자리, 김다은·정윤영 지음
책 부제부터 눈길을 끈다. 아니 강렬하다. ‘먹히지 않고 늙어가는 동물들을 만나다.’ 너무 직접적인 표현이어서 다소 거부감도 드는 게 사실이다.
세상에는 많은 동물이 있다. 그러나 범박하게 말한다면 두 부류의 동물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에게 도살돼 식탁의 고기로 오르는 쪽과 수명을 마치고 자연사하는 쪽이 그것이다.
‘생추어리’(sanctuary)라는 농장이 있다. 이곳은 지난 1986년 미국 동물보호 운동가 진 바우어가 동료들과 ‘가축수용소’ 인근 사체 처리장에서 ‘힐다’라는 이름의 양을 구조하고 만들었다. 양은 이후 1997년 자연사했으며 묘비에는 “영원히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변화시킬 친구”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진 바우어는 생추어리 농장에 대해 “동물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또한 그것은 학대를 견디고 온정이 피어난다는 의미에서 ‘완성의 장소’라고도 불렸다.
우리나라에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 민간이 주도가 돼 운영하는 동물보호소가 있다. 생추어리라는 용어로는 부르지 않는다.
동물들의 존엄성을 훼손하지 않는 보금자리, 즉 생추어리가 부상하고 있다. 생추어리를 매개로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롭게 들여다 본 ‘동물의 자리’는 이색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혼밥생활자의 책상’의 저자 김다은 ‘시사IN’ 기자와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의 저자 정윤영 르뽀작가가 공동 집필자로 참여했다. 사진은 ‘시사IN’ 사진팀 신선영 기자가 촬영했다.
한국의 첫 생추어리는 언제 등장했을까. 저자들은 지난 2019년 DxE(Direct Actions Everywhere)가 종돈장에서 구조한 돼지 새벽이와 함께 시작됐다고 본다. 현재 한국에는 모두 5개의 생추어리가 있다. ‘새벽이생추어리’,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 ‘화천 곰 보금자리’, ‘제주 곶자왈 말 보호센터’, ‘카라의 미니팜 생추어리’가 그것이다. 책에는 ‘카라의 미니팜 생추어리’를 제외한 4곳의 현장 취재 결과물이 실려 있다.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는 일명 동물해방물결이라 불리는 ‘동해물’이 운영하는 생추어리다. 소 15명(命·동물 세는 단위인 ‘마리’를 대체해 ‘목숨 명(命)’을 쓴다)을 데려오기 위해 직접 농장주에게 구입했다. SNS 모금 등을 통해 4600만 원을 모았지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인제의 소 농장에 맡겨졌지만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최대 6명만 수용이 가능한 탓에 나머지는 처분 기일에 맞춰 도축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활동가들은 별 수 없이 살아남은 소들에게 머위, 메밀, 미나리, 창포, 엉이, 부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들꽃과 들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은 강인하게 살아 남으라는 뜻에서였다.
폐교를 활용해 보금자리를 짓는 중에 미나리가 죽고 5명이 살아남았다. 소들이 이사오는 날 활동가들과 마을주민들은 긴장과 설렘 속에 이를 지켜보았다.
제주 야생숲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 용암지대다. 곶은 나무숲을, 자왈은 자갈이라는 의미다. 크고 작은 바위가 많아 사람이 살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다양한 생물들이 산다. 이곳은 40여 마리 말들이 자유롭게 산다. 안장도, 굴레도 없으며 말들은 누워서 잠을 잔다.
말 생추어리는 프로골퍼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김남훈 대표가 운영한다. 그는 2년 간 포크레인과 트랙터 운전하는 법을 배워 자갈과 가시덤불을 초원으로 개조했다. 습성이나 성향이 각기 다른 말들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퇴역한 경주마들은 다양한 스트레스를 ‘정형행동’(끙끙이)으로 표현하는데 쇠붙이를 잡아당기거나 사람들에게 발길질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말들과 지낼수록 “앎이 사랑이 되려면 그건 서로돌봄과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한편 저자 김다은은 “생추어리는 동물을 ‘보호’하는 곳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손상된 동물의 삶을 어떤 식으로 회복시킬지, 얼마나 되돌려줄 수 있을지를 우리 사회를 향해 묻는다”고 강조한다.
<돌고래·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세상에는 많은 동물이 있다. 그러나 범박하게 말한다면 두 부류의 동물만 존재할 뿐이다. 인간에게 도살돼 식탁의 고기로 오르는 쪽과 수명을 마치고 자연사하는 쪽이 그것이다.
진 바우어는 생추어리 농장에 대해 “동물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의 책임이 바로 우리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또한 그것은 학대를 견디고 온정이 피어난다는 의미에서 ‘완성의 장소’라고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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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젖소에게 빗질을 해주는 어린이. <돌고래 제공> |
인제 꽃풀소 달뜨는 보금자리는 일명 동물해방물결이라 불리는 ‘동해물’이 운영하는 생추어리다. 소 15명(命·동물 세는 단위인 ‘마리’를 대체해 ‘목숨 명(命)’을 쓴다)을 데려오기 위해 직접 농장주에게 구입했다. SNS 모금 등을 통해 4600만 원을 모았지만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인제의 소 농장에 맡겨졌지만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최대 6명만 수용이 가능한 탓에 나머지는 처분 기일에 맞춰 도축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활동가들은 별 수 없이 살아남은 소들에게 머위, 메밀, 미나리, 창포, 엉이, 부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들꽃과 들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은 강인하게 살아 남으라는 뜻에서였다.
폐교를 활용해 보금자리를 짓는 중에 미나리가 죽고 5명이 살아남았다. 소들이 이사오는 날 활동가들과 마을주민들은 긴장과 설렘 속에 이를 지켜보았다.
제주 야생숲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만들어진 용암지대다. 곶은 나무숲을, 자왈은 자갈이라는 의미다. 크고 작은 바위가 많아 사람이 살기는 어렵지만 반대로 다양한 생물들이 산다. 이곳은 40여 마리 말들이 자유롭게 산다. 안장도, 굴레도 없으며 말들은 누워서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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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과 ‘머위’라는 이름을 가진 젖소들. <돌고래 제공> |
한편 저자 김다은은 “생추어리는 동물을 ‘보호’하는 곳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손상된 동물의 삶을 어떤 식으로 회복시킬지, 얼마나 되돌려줄 수 있을지를 우리 사회를 향해 묻는다”고 강조한다.
<돌고래·2만2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