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화는 다른 작업보다 어렵습니다. 시기를 맞추고 제한된 시간에 그려야하는 등의 점이 그렇죠. 책이 나오기 전 가슴 두근거리며 기다리기도 했던 생각이 납니다.”
월간 ‘예향’ 지령 200호(2001년 5월호) 돌파를 기념해 마련된 애독자 좌담에서 밝힌 황영성 화백(조선대 미대 명예교수·전 광주시립미술관장)의 말이다. 이때 좌담에는 극작가 차범석(1924~2006)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정구선 남도문화예술진흥회 이사장, 이옥재 서울시 공무원이 참석해 애독자로서 월간 ‘예향’을 중심으로 진지하게 의견을 나눴다.
잡지 표지는 그 잡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얼굴과도 같다. 1984년 10월, ‘문화예술 종합 교양지’를 표방하며 첫 선을 보인 월간 ‘예향’ 표지는 남도출신 화가들의 그림으로 꾸며졌다.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오승윤 화백의 ‘개선(凱旋)’부터 IMF 여파로 잠정 발행 중단했던 2002년 2월(통권 209호) 월아(月娥) 양계남 화백의 ‘달리는 말을 타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160여 명의 지역 화가들이 참여했다. 이후 ‘예향’은 11년2개월 동안의 휴지기를 거쳐 창사 61주년을 맞아 2013년 3월 문화예술 전문잡지로 새롭게 탄생했다. 표지 또한 회화와 사진 등을 활용한 세련되고 시각적인 디자인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예향’ 표지화, 지역작가 160여 명 참여= ‘예향’이 창간된 때는 1984년 LA올림픽이 끝난 직후였다. 한국선수단은 금메달 6, 은메달 6, 동메달 7개로 10위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금메달 6개 가운데 양궁 서향순(광주여고 3학년)을 비롯해 레슬링 김원기(함평)·유인탁(전북 김제), 복싱 신준섭(전북 남원) 등 남도출신 선수들이 4개를 획득하는 쾌거를 거뒀다. 태극기를 배경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여궁사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손을 치켜든 선수… 창간호 표지화에는 이러한 올림픽 열기가 반영돼 있다. 오승윤 화백은 잡지 뒤편에 실린 ‘표지의 말’을 통해 “남도인의 두뇌가 총명하고 체력의 강인함을 전 세계에 보였던 것은 역사가 증명하지 않았던가”라며 “문화의 개선을 월간 예향에 기대한다”고 밝혔다.
통권 100호(1993년 1월호) 표지화는 김신석 작가의 ‘정월’, 200호(2001년 5월호) 표지화는 황영성 화백의 ‘가족이야기’로 꾸며졌다. 휴간호가 됐던 2002년 2월(209호) 월아(月娥) 양계남 화백의 표지화 ‘달리는 말을 타다’ ‘표지의 말’은 한편의 시다.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어머니의 품 같은/ 그리움과 추억이 없는 현재는/ 모래성 같은 미래의 로스탈쟈/ 나, 오늘 여기/ 내일의 기억을 위해 달린다.”
‘예향’은 한국화와 서양화, 수채화 등 다채로운 작품을 표지화로 선보였다. 표지화를 의뢰받은 작가들은 남도 출신으로 광주·전남을 비롯해 서울 등 전국각지에서 활동하는 원로· 중진작가들이었다. 작가들은 풍경과 정물, 인물 등 자신만의 그림스타일, 화풍(畵風)을 표지화에 유감없이 담아냈다. 독자들은 오지호(1905~1982) ‘무등산’(1988년 4월호)과 임직순 ‘여인의 얼굴’(1985년 5월호), 배동신 ‘목포항’(1985년 8월호), 아산(雅山) 조방원(1927~2014) ‘새아침’(1988년 1월호) 등 대가들의 작품을 매달마다 표지화로 접할 수 있었다.
◇복간 ‘예향’ 표지, 시대 트렌드 맞춰 시각적 디자인=지난 2013년 4월, ‘예향’은 11년 2개월 만에 새롭게 탄생했다. 우선 ‘문화예술 종합 교양지’에서 ‘문화예술 전문 매거진’으로 위상을 재정립하면서 제호(題號)와 표지 디자인에 변화를 꾀했다. 표지는 작품 이미지와 사진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당월호 기사에 나오는 작가들의 작품이미지와 특집과 기획 등을 취재하며 사진기자가 포착한 사진을 표지로 채택한다. 특히 특집·기획 주제나 계절 등을 면밀하게 고려해 여러 후보작 가운데 표지를 최종적으로 낙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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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 복간호 |
복간호인 2013년 4월호(210호) 표지는 특집 ‘불붙은 아시아의 문화전쟁’ 싱가포르 현지 취재 과정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꾸며졌다. 사진기자가 싱가포르 문명박물관에 전시중인 태국작가 작카이 시리뷰트르의 설치작품 ‘수의(壽衣·Shroud)’를 앙각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통권 300호(2020년 10월호)는 복간 이후 그동안 만들었던 잡지 표지를 선별해 모자이크했다.
또한 작가들의 회화·설치 작품을 표지로 채택해 기존 ‘예향’ 표지화의 맥(脈)을 잇고 있다. 그 가운데 황영성·최영훈·한희원·양세미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활발한 작품 활동을 상세하게 기사로 소개하면서 작품 이미지를 표지로 채택했다. 2020년 7월호(297호) 표지는 한희원 작가의 작품 ‘바이올린을 켜는 트빌리시 악사’이다. 작가는 2019년 10개월 동안 조지아공화국(옛 그루지야) 고도(古都) 트빌리시에서 체류하며 360여 점(25호 크기)의 작품을 그리고, 일기처럼 시를 썼다. 2023년 12월호(338호) 표지는 황영성 화백의 설치작품 ‘라운드 가족이야기’(Round Family·2006년 작)로 꾸며졌다.
잡지 표지에는 발행 시기의 계절감이 적절하게 반영돼 있다. 2018년 12월호(278호) 표지는 ‘예향 초대석’에 소개된 구멍가게 펜화작가 이미경 작가의 작품 ‘청운면에서-겨울’(부분)이다. 작가는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가는 구멍가게들을 찾아 기록하듯 30년 가깝게 펜화로 화폭에 담고 있다. 불 밝힌 구멍가게와 지붕 위 수북이 쌓인 눈, 설화(雪花)핀 겨울나무는 독자들을 아련한 옛 시절로 이끈다. ‘2019 광주 FINA 세계수영선수권대회’가 열렸던 때 발행된 2019년 7월호(285호)는 양세미 작가의 ‘수영장 시리즈’(부분)가 표지로 채택됐다. 청량감을 안겨주는 블루 톤 그림과 함께 은암미술관에서 열린 ‘청년작가 13인전-DIVE INTO YOU’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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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40주년 기념호 |
‘예향’은 40년 동안 잡지의 얼굴인 표지를 통해 남도 문화예술과 작가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며 ‘예향’(藝鄕) 브랜드를 형상화했다. 지역에서 발행하지만 ‘글로컬’(Global+Local)을 지향하는 문화예술 매거진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표지 콘셉트를 틀에 가두지 않는다. 앞으로도 새로 발행된 ‘따끈한’ 잡지를 손에 든 독자들이 표지만 보고서도 설렘과 기대감, 호기심을 안고 책장을 넘길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다.
/글=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