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나누는 만큼 더 멀리 퍼져 나갑니다”
2026년 01월 04일(일) 19:10 가가
새해 희망 키워드 <1>나눔-62년째 봉사활동 박종수 치과의사
1965년 치대 재학 중 첫 의료봉사
군의관 복무 인연 광주에 정착
독거노인 등 3만여명 무료 진료
헌혈·구호품 모으기 등 이웃사랑
사랑의 식당 운영 36년째 무료급식
의료·식사 연계 돌봄거점 육성할 것
1965년 치대 재학 중 첫 의료봉사
군의관 복무 인연 광주에 정착
독거노인 등 3만여명 무료 진료
헌혈·구호품 모으기 등 이웃사랑
사랑의 식당 운영 36년째 무료급식
의료·식사 연계 돌봄거점 육성할 것
기후위기부터 차별과 갈등, 경기 침체와 빈곤까지, ‘위기의 시대’다. 그럼에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지만 큰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붉은 말의 해’를 맞아 살만한 세상을 위해 나눔·용기·연대 등의 키워드를 전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전한다.
“새해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위해 손길을 보태고 싶습니다. 사랑은 나누는 만큼 더 멀리 퍼져나가니깐요.”
지난 2일 광주시 동구 황금동의 한 치과의원에서 만난 박종수(85) 원장은 “하늘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봉사를 이어가고 싶다”고 올해도 나눔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박 원장은 서울대 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5년 처음 의료 봉사에 나선 이후, 올해로 62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1년에는 사회복지법인 ‘분도와 안나 개미꽃동산’을 설립, 광주시 남구에서 36년째 ‘사랑의 식당’을 운영하며 무료 급식 봉사에도 나서고 있다.
그의 ‘나눔 의지’는 올해에도 변함없이 불타고 있다. 무료 급식 봉사는 물론, 새해에는 의료법에 저촉되지 않는 한에서, 사랑의 식당 내에 어르신들을 위한 기초 의료 지원 공간을 만드는 안까지 구상하고 있다. ‘인간 생명이 최우선 가치’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사랑의 식당을 의료와 식사를 연계한 지역 돌봄거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박 원장은 “지독한 가난을 겪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봉사를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박 원장은 충남 논산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6·25전쟁 직후 병환으로 조기 퇴직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이후 부친의 병세가 악화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입원을 시도했지만, ‘대학생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8개월여 동안 무료 진료를 거절당했다.
“벼랑 끝과 천당 사이를 오가는 시간을 보낸 끝에, 그때 받은 도움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봉사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박 원장은 대학 졸업 후 광주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광주·전남과 연을 맺었다. 휴일마다 섬마을부터 산골짜기 오지까지 전남 지역 무의촌을 찾아 다니며 치과 진료에 나섰다. 베트남전쟁에도 파병돼 일과 시간에는 군인을, 밤에는 현지 주민들을 치료했다. 그 시절 함께 무의촌을 찾았던 간호사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아 전역 후 광주에 개원해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로도 박 원장은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3만여명에게 무료 진료를 해줬으며, 헌혈과 무료 진료 운동, 구호품 모으기, 이웃사랑 실천 운동 등도 병행했다.
1991년에는 광주에서 청소년 복지시설을 운영하던 허상회 원장의 요청으로 함께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고 ‘사랑의 식당’ 문을 열었다. 허 원장이 별세한 뒤인 2019년부터는 이사장을 맡아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사랑의 식당은 매일 수백명의 취약계층에게 식사를 제공해왔으며,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누적 인원은 법인 측 추산 300여만명에 달한다.
박 원장은 “자원봉사자와 후배 의사들, 지역 봉사단체, 각종 기관의 후원과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유지해올 수 있었다”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찾아오는 어르신의 상당수가 나보다 나이가 적다. 내가 배식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미안해하실 때도 많다”고 미소를 지었다.
구순을 향해가는 고령이지만, 박 원장은 봉사를 처음 시작하던 청년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고 올해도 봉사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2026년 새해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박 원장은 “어려운 이들이 어떤 힘든 순간에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간절히 바라면 길은 결국 열리더라”며 “새해에는 시민들이 주변 이웃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글·사진=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지난 2일 광주시 동구 황금동의 한 치과의원에서 만난 박종수(85) 원장은 “하늘이 허락하는 그날까지 봉사를 이어가고 싶다”고 올해도 나눔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박 원장은 서울대 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65년 처음 의료 봉사에 나선 이후, 올해로 62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991년에는 사회복지법인 ‘분도와 안나 개미꽃동산’을 설립, 광주시 남구에서 36년째 ‘사랑의 식당’을 운영하며 무료 급식 봉사에도 나서고 있다.
박 원장은 충남 논산 공무원이었던 부친이 6·25전쟁 직후 병환으로 조기 퇴직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고, 학업과 생계를 병행하며 성장했다고 한다. 이후 부친의 병세가 악화돼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입원을 시도했지만, ‘대학생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8개월여 동안 무료 진료를 거절당했다.
“벼랑 끝과 천당 사이를 오가는 시간을 보낸 끝에, 그때 받은 도움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봉사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박 원장은 대학 졸업 후 광주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광주·전남과 연을 맺었다. 휴일마다 섬마을부터 산골짜기 오지까지 전남 지역 무의촌을 찾아 다니며 치과 진료에 나섰다. 베트남전쟁에도 파병돼 일과 시간에는 군인을, 밤에는 현지 주민들을 치료했다. 그 시절 함께 무의촌을 찾았던 간호사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아 전역 후 광주에 개원해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이후로도 박 원장은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 3만여명에게 무료 진료를 해줬으며, 헌혈과 무료 진료 운동, 구호품 모으기, 이웃사랑 실천 운동 등도 병행했다.
1991년에는 광주에서 청소년 복지시설을 운영하던 허상회 원장의 요청으로 함께 사회복지법인을 설립하고 ‘사랑의 식당’ 문을 열었다. 허 원장이 별세한 뒤인 2019년부터는 이사장을 맡아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사랑의 식당은 매일 수백명의 취약계층에게 식사를 제공해왔으며,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누적 인원은 법인 측 추산 300여만명에 달한다.
박 원장은 “자원봉사자와 후배 의사들, 지역 봉사단체, 각종 기관의 후원과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유지해올 수 있었다”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찾아오는 어르신의 상당수가 나보다 나이가 적다. 내가 배식하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미안해하실 때도 많다”고 미소를 지었다.
구순을 향해가는 고령이지만, 박 원장은 봉사를 처음 시작하던 청년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고 올해도 봉사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한다. 2026년 새해에도 어려운 이웃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박 원장은 “어려운 이들이 어떤 힘든 순간에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간절히 바라면 길은 결국 열리더라”며 “새해에는 시민들이 주변 이웃들에게도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글·사진=윤준명 기자 yoon@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