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기생충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7월 28일(일) 22:00 가가
기생충은 인간 등 숙주에 의존해 생존한다. 현재까지는 미국 유타주 동굴에서 발견된 1만 년 전 요충 알이 인간과 기생충의 관계를 입증하는 가장 오랜 증거다. 고고학이 인간의 분변을 연구하는 이유는 고대 생활상을 추적하는 단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 토양분석 사례를 고(古)기생충 연구의 효시로 여긴다. 이 유적에서는 토양매개성 기생충인 회충과 편충 알이 발견됐다. 연구자들은 “정착 농경생활에 따라 토양 오염이 만연했다”고 설명한다. 인구 증가에 따라 늘어난 분변이 오염원이라는 해석이다.
백제의 사비 도읍기(538~660년)에 해당하는 충남 부여 사비도성에서도 기생충이 발견됐다. 화장실을 연상케 하는 V자형 유구에서 회충, 편충, 간흡충 알이 확인됐다. 조선시대 경북궁 성벽, 육조거리 등 토양 조사에서는 식품매개성 기생충인 간흡충과 광절열두조충이 검출됐다. 잉어나 송어 등 민물고기를 날것으로 먹었을 때 감염되는 기생충이다. 간흡충(간디스토마)은 담도 폐쇄를 일으키고 심하면 담관암·간암 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섬진강·낙동강·영산강·금강·한강 인근 주민에게서 감염사례가 보고된다. 민물고기를 생식하는 고대의 DNA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근 북한이 남한에 날려보낸 풍선에 실려온 오물에서 기생충이 발견됐다. 오물에 딸려온 토양을 분석한 결과 회충, 편충, 분선충 등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자취를 감춘 기생충이 검출됐다. 당국은 “이 토양에선 사람 유전자도 발견돼 인분에서 나온 기생충임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토양 매개성 기생충은 화학비료 대신 인분 비료를 사용하거나 생활 환경이 극히 비위생적일 때 생긴다. 2017년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 수십 마리가 발견돼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여전한 그들의 위생 상태는 절망적이다. 북한이 풍선도발에서 보여준 현실이다. 기생충이 굶주리는 북한 사람들의 몸에서 양분을 빼앗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더 슬프게 한다. 머지않아 식량과 함께 구충제를 필수 의약품으로 선정해 북에 챙겨 보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