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 오광록 서울취재본부 부장
2024년 07월 25일(목) 21:30
가끔 까마귀는 독수리를 공격한다. 까마귀의 공격 스타일은 독수리의 목덜미를 부리로 쪼는 형태다. 하지만 독수리는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날개를 활짝 펴고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른다. 그럼 따라가던 까마귀는 제풀에 지쳐 공격을 포기하거나 산소 부족으로 기절하기도 한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서 입을 수 있는 작은 상처도 감염 탓에 야생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독수리의 대응은 상대가 더 이상 공격할 수 없는 ‘상황과 위치’를 만드는 강자의 아름다운 대응이며 비상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과정에서 불거진 당 대표 후보 간 진흙탕 싸움이 정치판에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김건희 여사의 문자를 읽고도 무시했다는 논란에서 시작해 지난 대선 때 댓글 팀을 운영했다는 폭로로 이어졌다. 급기야 한 명의 후보를 둘러싼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 청탁 발언까지 나오면서 당 안팎이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다. 전당대회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상대에 대한 공격은 늘 있는 일이지만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내분은 당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파급력이 컸고, 야당의 공세도 거셌다. 과거에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권경쟁서 불거진 다스 차명 보유·비선실세 의혹 폭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더불어민주당도 비슷한 오점은 있다. 이재명·이낙연 전 대표의 대권경쟁에서도 숱한 폭로가 이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민주당의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심지어 대선이 끝난 뒤 이낙연 측에서는 “대장동 의혹을 최초로 언론에 제보했다”고 고백하는 뒤끝도 남겼다.

공격과 폭로는 정치의 숙명일 수 있다. 정치판 곳곳에 까마귀의 날카로운 부리는 언제나 존재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죽음 문턱까지 몰아갔던 적들 속에서 ‘용서’를 통해 더 높게 비상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아내를 버려야 하냐”는 말 한마디로 장인의 좌익 활동 논란을 쪼아대던 숱한 부리를 무안하게 했다. 어쩌면 국민은 맞서 싸우는 정치인의 피 묻은 ‘부리’보다는 정적을 뒤로 하고, 창공을 향해 활짝 펼치는 찬란한 ‘날개’를 보고 싶어 할지 모르겠다.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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