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 - 김지을 정치부 부장
2024년 07월 01일(월) 22:00
어린 시절, 명절이면 고향 마을 입구에서 큰 집·외갓집까지 가는 200m는 설레임으로 들뜬 거리였다. 가기 전 시외버스 정류장 앞 구멍가게는 “많이 컸네”라며 이것저것 쥐어주던 마을 어르신을 만나던 공간이었다. 마을 청년회관은 멍석을 깔고 윷놀이를 하는 부모님 또래 청년 삼촌이 “맛있는 거 사먹어”라며 용돈을 쥐어주던 곳이었다. 청년회관 지붕에는 삼촌들이 내놓은 마을 발전 후원금이 적힌 종이가 빙 둘러 붙어있던 기억이 여전하다.

부모님 따라 100가구 남짓한 마을을 돌다 담 너머로 삐죽 나온 가지에 걸려있던 감·밤 등을 땄던 신기함도, 마을 입구에 있던 공동 우물 물을 길어보겠다며 밧줄로 묶여있던 두레박을 내려 이리저리 흔들어댔던 재미도 잊히질 않는다.

‘나의 살던 고향’이 달라졌다.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이미경) 책의 그림과 비슷했던 구멍가게를 지키던 동네 어르신도 사라졌다. 마을 회관을 찾는 사람은 손으로 꼽는다. 고흥의 경우 20~39세 인구(2023년 2952명)가 10년 전인 2003년(9104명)에 견줘 무려 67.6%나 줄었다.

동네 감 나무는 기후 변화로 더 이상 열리지 않고 우물은 폐공된 지 오래다. 하루에 8㎞를 걸어 다녔다는 부모님 모교는 텅 비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 30일 내놓은 계간지 ‘지역산업과 고용’은 우리 고향의 ‘소멸’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올 3월 기준 국내 소멸위험지역은 전체 228개 시·군·구 중 130곳(57.0%)에 달했다. 전남 22개 시·군 중 순천·광양을 제외한 20개 시·군이 소멸위험지역(90.9%)이다. 삶에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기반이 무너지는 것으로 해석되는 ‘소멸고위험지역’(0.2 미만)이 11곳에 이른다.

수도권은 만원이다. ‘서울은 만원이다’(이호철·1966년)가 쓰여졌을 때보다 더 ‘만원’이다. 지난 2019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체 인구(5184만 9861명)의 50%(2592만 5799명)를 넘어서더니 올해 50.8%(2603만 3235명·3월 말 기준)에 달할 정도로 수도권 집중이 가속화하고 있다.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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