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시 쓰기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4년 06월 26일(수) 22:00
동네책방 취재의 즐거움 중 하나는 책방지기에게서 인상적인 손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그 중에서 칠순이 넘은 나이에 난생 처음 시를 쓰게 된 담양 한일철물점 할아버지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런 게 동네책방의 역할이구나 싶어서이다. 그가 시를 쓰게 된 건 철물점 앞에 문을 연 책방 ‘수북수북’을 방문한 덕이었다. 호기심에 책방을 찾은 그는 책방지기가 권한 책을 읽고 시를 쓰게 됐다.

책방지기가 추천한 책은 ‘사랑인줄 알았는데 부정맥’. 제목에서부터 위트가 느껴지는 책은 일본 노인들이 쓴 짤막한 시(센류) 모음집이다. 책에는 일본 전국유료실버타운협회 주최로 매해 열리는 센류 공모전 수상작 88편이 실렸다.

“연상이/ 내 취향인데/ 이제 없어”라고 읊은 92세 할아버지의 시나 “만보기 숫자/절반 이상이/물건 찾기”, “눈에는 모기를, 귀에는 매미를 기르고 있다” 등의 작품은 어르신들의 재치를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국내에서도 비슷한 책이 나왔다. ‘살아 있다는 것이 봄날’은 대한노인회와 한국시인협회가 공동 주최한 제 1회 ‘짧은 시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다. 응모작은 무려 5800여 편에 달했고 이 중 수상작 12편을 포함해 100여편이 실렸다.

심사를 맡은 나태주 시인은 ‘작품 안에 많은 시간이 축적’된 작품을 선정했다고 밝혔는데, 대상 수상작인 “아내의 닳은 손등을/오긋이 쥐고 걸었다/옛날엔 캠퍼스 커플/지금은 복지관 커플”(‘동행’)이 딱 그런 작품이다.

또 “아이스 아메리카노/따뜻한 거 한잔”(‘커피 주문’)에선, 웃음이 터지고, “임종하시는 어머니 손잡고, ‘엄마 곧 만나요’하고선/하루에 꼭 챙기는 한 줌의 영양제”라는 글에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문방사우’ 대신에 효자손, 리모컨, 진통제, 돋보기를 ‘노년사우(老年四友)’로 꼽고, “잘 노는 친구 잘 베푸는 친구 다 좋지만/이제는 살아 있어 주는 사람이 최고구나”라고 노래하는 마음은 또 어떤가.

어쩌면 그들이 살아온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만 해도, 가슴을 울리는 한 편의 멋진 시가 탄생하는 것이리라.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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