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경림 - 박성천 문화부장
2024년 05월 26일(일) 21:30
지난 22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신경림 시인은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문인이었다. 예술원 회원이기도 했던 고인이 현대문학사에 남긴 족적은 또렷하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무대”로 시작되는 ‘농무’는 현대시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당대 민중으로 대변되는 농민들의 삶을 핍진하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렸다. 이밖에 ‘가난한 사랑 노래’, ‘목계장터’, ‘쓰러진 것들을 위하여’ 등도 문학적 역량을 보여주는 수작들로 꼽힌다.

1936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젊은 시절 강원도와 충청도 등지를 떠돌며 농부와 광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사색적이면서도 민요풍의 작품은 그와 같은 밑바닥 체험에서 기인하는 바 크다. 1970~1980년대에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고문,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문단의 자유실천운동과 민주화에도 기여했다.

올해는 고인의 첫 시집 ‘농무’가 출간된 지 50년째가 되는 해다. 1975년 창비시선 1호로 출간된 작품집은 그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민중시라는 카테고리에 국한할 수 없을 만큼 빛나는 요인들이 있는데 ‘갈대’는 인간에 대한 탐색, 동서양의 조화, 사유의 깊이가 정치하게 맞물린 작품이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중략)/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지속되는 경제난에 서민들의 삶은 날로 팍팍해지고 있다.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과 작은 위로 한번 받을 수 없는 소외된 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불현듯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라는 시가 떠오른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박성천 문화부장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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