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잔치 - 채희종 정치·사회담당 편집국장
2024년 05월 23일(목) 22:00
지금의 50대가 직장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인 1990년대만 하더라도 선배 부모님들의 ‘회갑연’에 인사 드리러 가는 것은 회식 참석 이상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입사 초기 회갑을 맞은 선배의 아버님 앞에서 동기들과 함께 “아버님 건강하십시요”라며 큰 절을 올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늘고 고령 인구가 많아지면서 2000년을 전후로 회갑연은 점차 사라졌다. 대신 70세나 80세에 생일잔치를 하는 경우가 일반화됐고 근래에는 그것도 둘 중 한번만 치르는 것이 대세가 됐다.

나이에 맞춰 장수를 축하하는 잔치는 옛날부터 있었으며 특히 나라가 주재하는 경로잔치는 중요 국가 행사로 여겨져 왔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노인들을 초청해 양로연(養老宴) 또는 기로연(耆老宴)을 열었다. 세종시대 법제화된 양로연은 한양에서는 왕과 왕비가 대궐에서 베풀었고, 같은 날 지방에서는 수령이 주재했다. 양로연은 대부분 80세 이상 노인을 초청해 열었으나 70세 이상일 때도 있었다. 또 기로연은 정2품 이상을 지낸 70세 이상의 원로 문신들을 예우하기 위해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조정에서 베푼 잔치였다.

세종실록에는 “100세 된 노인은 세상에 드물다. 해마다 쌀 10석을 지급하고 매월 술과 고기를 보내 줘라. 월말엔 그 수효를 기록해 보고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듯이, 노인의 장수는 예로부터 축하와 존중의 대상이었다.

현대에도 상당수 지자체들이 군 단위 향교 주관으로 장수 경로잔치를 열고 있으며 어버이날이 낀 5월에는 아파트 단위로 노인 위안잔치를 여는 곳도 많다. 그런데 얼마 전 이 같은 경로잔치가 오히려 노인들을 섭섭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국내 여러 아파트 단지들이 노인을 대상으로 한 어버이날 경로잔치나 선물 제공 기준을 65세에서 75세 이상으로 올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일부는 예산을 감당하지 못해 아예 행사를 취소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이미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하고 있다. 의료와 복지 정책 등 사회 전반적인 면에서 65세인 노인의 기준 나이를 상향해야 할 때이다.

/채희종 정치·사회담당 편집국장 cha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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