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권 회피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4년 05월 08일(수) 22:00
과거 세금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공자는 세금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고,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로 죽음과 세금을 꼽았다. 제1계급 성직자, 제2계급 귀족의 세금은 탕감해주면서 부르주아로 대표되는 평민, 제3계급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려했던 루이 16세에 맞서 1798년 5월 프랑스혁명이 일어났다.

‘가렴주구(苛斂誅求)’는 조병갑 ‘맞춤형’ 사자성어다. 그는 무고한 이를 잡아 죄를 뒤집어 씌워 보석금을 챙기는 등 악행을 일삼았는데, 자신의 모친상에 부조금 2000냥을 걷어오라는 지시에 항의하는 전봉준의 부친 전창혁을 곤장으로 때려 죽이면서 그 정점에 달했다. 온 나라를 뒤흔든 1894년 동학혁명의 원인 제공자였던 그는 영의정이었던 큰아버지 조두순 덕에 완도 고금도에 잠시 머물렀다가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고등재판관으로 승진했다.

소득이나 수확량의 10분의 1 전후를 권력자에게 헌납하는 십일조(十一租)는 거의 모든 고대 문명에 나타나고 있다. 문자로 제일 먼저 기록한 것은 세금이었고, 세금을 걷는 과정에서 회계, 화폐, 문자 등도 함께 발달할 수 있었다. 소득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현대적인 조세 시스템이 정착되기 전 권력자들은 사치·전쟁 등을 위해 세금을 가혹하게 걷다가 쫓겨나고, 치세에 성공한 군주들은 언제나 공평무사한 세금 징수로 백성을 편안케 했다.

2023년 우리나라 국가채무가 1126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9조3000억원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총세입이 예산 대비 37조원 감소하는 등 세금을 덜 걷었기 때문이다. 종합부동산세, 법인세, 양도세 등을 낮춰주며 부자들 주머니만 채워준 것이 화근이다.

조세권은 국가의 핵심 기능 중 하나다. 특히 조세는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부유층에게 세금을 더 징수해야만 정점으로 치닫는 양극화를 완화시키고, 사회적 약자를 두텁게 보호해 우리 사회를 유지할 수 있다. 부유층을 위해 조세권을 회피하고, 공공 재정을 임의로 긴축해 국민을 어렵고 불편하게 하는 것이 과거 가렴주구와 뭐가 다르겠는가.

/chadol@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