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잃은 슬픔 - 김지을 정치부 부장
2024년 05월 06일(월) 21:30
고(故) 박완서(1931~2011) 작가의 ‘한 말씀만 하소서’는 아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다. ‘자식 잃은 참척의 고통과 슬픔, 그 절절한 내면 일기’라는 부제 만큼 먼저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의 고통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참척을 당한 에미에게 하는 조의는 아무리 조심스럽고 진심에서 우러나온 위로일지라도 모른 고문이요, 견디기 어려운 수모였다’,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기차가 달리고 계절이 바뀌고…’, ‘내가 독재자라면 88년 내내 아무도 웃지 못하게 하련만’, ‘자식을 앞세우고도 살겠다고 꾸역꾸역 음식을 처넣는 에미를 생각하니 징그러워서 토할 것 같았다’ 등등. 책에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고통과 분노, 절망으로 울부짖는 내밀한 육성이 담겼다.

참척(慘慽). 자식이 먼저 세상을 뜬, ‘너무나 참혹하고 서러운’ 슬픔을 일컫는다. ‘울음에는, 약간이나마 감미로움이 섞여 있게 마련’이라는 작가는 ‘참척의 고통’에는 전혀 감미로움이 섞여 있지 않은,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라고 썼다.

지난 2일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 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참사로 자녀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 아빠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해온 지 1년 6개월 만이다.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도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 채 상병이 숨진 지 10개월 만이다.

뒤늦게 통과된 만큼 진상규명이 시급한데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팽배하다. 대통령실은 이미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세월호 이후 비슷한 참사가 반복되는데도 정부 행태는 변한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총선 민심도 애써 외면하는 듯 하다.

아들·딸이 달아주던 카네이션도 없이 어버이날을 보내고 변변한 외식도 하지 못한 채 가정의 달을 지내며, 화려한 5월의 꽃들을 보며 웃음짓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엄마·아빠들이 하루라도 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 국가와 대통령의 책무다.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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