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식물 박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4년 04월 22일(월) 00:00
박은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작물로 신·구 대륙에 걸쳐 광범위한 지역에서 재배됐다. 식용보다는 용기 생산을 위해 재배된 식물이라는 점도 여느 작물과 다른 특징이다. 1만년 재배 역사를 거친 박의 전파에는 두 가지 가설이 있다. 빙하기에 아메리카로 건너간 고(古)아시아인에 의해 전파됐다는 아시아 도래설이 있다. 박 열매가 물에 잘 뜨기 때문에 해류를 타고 퍼진 표착물(漂着物)이라는 가설도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박이 쌀·밀과 더불어 매우 긴 재배역사를 가진 식물이라는 점이다.

한반도 유입 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박 식물유체(종자와 열매껍질)는 주로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충주 조동리, 천안 백석동 고재미골, 안동 저전리, 논산 마전리, 밀양 금천리 등 5곳이다. 중국, 일본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아직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박 유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세빈 목포대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최근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발간하는 학술지(헤리티지:역사와 과학)에 기고한 ‘한반도 선·역사시대 박의 재배와 이용’ 논문에서 박이 청동기 시대에 한반도에 유입돼 삼국시대에 이르러 품종이 다양·대형화했다고 분석했다. 백제시대 유적인 충남 서천 봉선리 목곽고(木槨庫·나무 저장고)에서 출토된 박 껍질 두께는 5.5㎜를 웃돈다. 야생종의 껍질 두께가 1.5㎜에 그치기 때문에 두터워진 두께는 재배의 특징으로 간주된다. 재배·순화과정을 거치면서 껍질이 두꺼워지고 커져 바가지 등 생활용구를 만들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박은 고려시대 문헌인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에서 여섯 채소 가운데 하나로 꼽혔고 조선시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도 겨울철에 대비한 채소의 하나로 거론됐다. 삼국유사 원효불기(元曉不羈)조에는 바가지를 두드려 악기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역사 깊은 식용 작물이지만 초가지붕에 주렁주렁 달린 박은 옛 얘기가 됐다. 박 요리를 찾는 사람들이 드물고 맛을 기억하는 이들도 줄고 있다. 표주박을 만드는 일은 보기드문 광경이 됐다. 세상 변화를 탓할 일은 아니지만 전통 식물이 잊혀져가는 현실이 아쉽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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