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사과 - 채희종 정치·사회담당 편집국장
2024년 03월 28일(목) 22:00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 하나를 고르라면 단연 사과일 것이다. 지난 설 이후 가격이 급등한 ‘금사과’를 조금이라도 싸게 구매하기 위해 할인행사가 열리는 대형마트에서는 ‘오픈런’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정부와 여당은 사과를 비롯한 과일 가격을 낮추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야당은 물가 안정에 실패한 정부를 연일 공격하고 있다. 총선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은 패를 나눠 사과 한 개 값이 ‘5000원이니, 1만원이니’ 하며 다투는 등 사과 한 알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정부가 상당 부분 가격을 잡았다고 했지만 서민들은 아직도 마트에서 들었다 놨다를 반복할 뿐 사과 한 개를 쉽게 장바구니에 담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사과 대란에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신화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금사과 한 개가 국가를 멸망시키는 소재로 등장한다. 바로 트로이 전쟁을 촉발한 ‘불화(不和)의 황금사과’ 사건이다. 어느 날 아이아코스 왕의 아들 펠레우스와 바다의 여신 테티스의 결혼식에 모든 신들이 참석했는데 유일하게 초대받지 못한 신이 있었다. 바로 불화의 여신 ‘에리스’였다. 초대받지 못한 것에 앙심을 품은 에리스는 결혼식장에 황금사과를 던졌다. 이 사과에는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혀 있었고, 이를 본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 등 세 명의 여신은 서로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다.

판결을 맡은 제우스는 원망을 듣지 않기 위해 트로이 왕자로 당시 목동일을 하던 ‘파리스’에게 가장 아름다운 여신을 결정하도록 한다. 아테나는 전쟁에서 영원한 승리를 약속했고, 헤라는 지상의 권력을, 아프로디테는 최고의 미인을 약속했다. 파리스는 황금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주고 그 대가로 아프로디테는 파리스가 최고의 미인인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를 꿰차고 트로이로 도피하게 도와준다. 이는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됐고, 이후 10년간 수많은 목숨이 전쟁에 사라졌다.

현실세계에서도 사과가 한 나라를 흔들다니 아이러니다. 불화의 사과가 되지 않도록 유통구조 개선 등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치권의 몫이다.

/채희종 정치·사회담당 편집국장 chae@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