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봉선화’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4년 03월 07일(목) 00:00 가가
열 여섯 소녀 이옥선은 1942년 중국으로 끌려갔다.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하며 지옥같은 삶을 견뎌낸 그는 1993년 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는 일에 앞장섰다.
고(故) 이옥선 할머니의 이야기와 위안부 역사는 고흥 출신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 노블 ‘풀’(창비)을 통해 되살아났다. ‘풀’은 한국 최초로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하비상을 수상했고 35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을 만큼 전 세계의 공감을 얻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짙은 먹빛과 거친 선으로 그려낸 할머니의 삶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이옥선 할머니처럼 일본을 상대로 40년간 투쟁해 온 또 다른 할머니들이 있다.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갔던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이다. 지난달 광주에서 공연된 연극 ‘봉선화Ⅲ’을 잊을 수 없다. 작품을 무대에 올린 이들은 1998년부터 할머니들을 도운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지원회와 아이치현민의 손에 의한 평화를 바라는 연극모임 소속 ‘일본인들’이었다.
중학생, 직장인, 주부, 변호사 등 나고야시의 평범한 시민들이 부르는 아리랑을 들으며 관객들은 울컥했다. 연극을 보는 내내 ‘수십년간 할머니들과 함께 싸우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떤 마음으로 연극을 제작해 광주에서 공연을 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시간이 10여년 전 도쿄의 어느 극장으로 되돌아갔다. 광주산(産) 5·18 뮤지컬 ‘화려한 휴가’ 현장이다. 공연을 주최한 이들 역시 우타고에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의 5·18을 알리기 위해 후원회를 조직해 티켓을 판매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교포들은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지 못하는데 한국의 역사를 알리려 일본인들이 후원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받았다고 했다.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5·18에 대한 왜곡은 여전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 ‘건국전쟁’의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파묘’를 ‘좌파영화’로 규정하는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mekim@kwangju.co.kr
고(故) 이옥선 할머니의 이야기와 위안부 역사는 고흥 출신 김금숙 작가의 그래픽 노블 ‘풀’(창비)을 통해 되살아났다. ‘풀’은 한국 최초로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하비상을 수상했고 35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을 만큼 전 세계의 공감을 얻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마다 짙은 먹빛과 거친 선으로 그려낸 할머니의 삶이 마음에 깊이 박힌다.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5·18에 대한 왜곡은 여전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 다큐 ‘건국전쟁’의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다룬 ‘파묘’를 ‘좌파영화’로 규정하는 대한민국이다. 그래서 더 부끄럽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