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 - 박성천 문화부장
2024년 03월 03일(일) 21:30 가가
한국 현대소설의 고전을 꼽으라면 여러 작품을 들 수 있다. 이데올로기 너머 제3세계를 그린 최인훈의 ‘광장’, 감각적인 문체로 현대인의 고뇌를 묘사한 김승옥의 ‘무진기행’, 지식인들의 병리를 은유적으로 포착한 이청준의 ‘병신과 머저리’ 등이 있다. 물론 독자 취향에 따라,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고전에 대한 범주는 달라질 수 있다. 그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명작 가운데 하나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1978)이다. “사람들은 아버지를 난장이라고 불렀다”로 시작되는 소설은 1970년대 재개발로 밀려난 난장이 가족의 고통과 슬픔을 그린 수작이다.
얼마 전 작가 1주기를 즈음해 ‘난쏘공’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성과힘’ 출판사가 펴낸 소설은 판형, 표지 등을 바꾸고 일부 표현도 오늘의 표기법에 따랐다. 짧은 문장과 환상적인 기법 등이 맞물려 빚어내는 소설미학은 여전히 압권이다. ‘난쏘공’은 현재까지 325쇄를 찍었으며 누적 판매 150만부를 기록했다.
시대를 초월해 ‘난쏘공’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세희 작가가 당대뿐 아니라 이후 세상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견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작가의 글’에서 “지금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만, 그때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악’이 내놓고 ‘선’을 가장하는 것이었다. 악이 자선이 되고 희망이 되고 진실이 되고, 또 정의가 되었다”고 통탄했다.
‘난쏘공’이 출간됐던 1970년대나 오늘의 사회나 달라진 것은 별반 없어 보인다. 극심한 양극화와 기득권의 내로남불,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는 점점 심해지는 추세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수히 많은 ‘난장이’들이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 속 난장이 가족의 절규가 들려오는 듯 하다.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난쏘공’ 93쪽).
/skypark@kwangju.co.kr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도 천국을 생각해 보지 않은 날이 없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난쏘공’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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