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럼 깨기 - 김대성 제2사회부장
2024년 02월 20일(화) 22:00
정월 대보름은 우리 조상들이 설날보다 더 성대하게 맞았던 명절이다.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15일 동안 설명절이라고 해 연일 축제였으며, 이 시기에는 빚 독촉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선조들은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에 새해를 어떻게 보낼지 계획하고 한 해의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달집을 태우고 쥐불놀이와 지신밟기 등 민속놀이를 했다.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 등이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다면, 부럼 깨기와 오곡밥(보통 팥·수수·차조·찹쌀·검은콩) 먹기는 개인의 건강과 관련이 깊었다. 그중에서도 정월 대보름 이른 아침에 땅콩이나 호두 등 견과류를 어금니로 깨무는 부럼 깨기는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는 세시풍속이다.

부럼 깨기에 대한 정확한 유래는 알기 어렵지만 조선 후기에 나온 여러 세시기류나 죽지사류 기록에 그 사례가 확인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전승되어온 민속임을 짐작할 수 있다. 다른 말로 ‘부스럼(또는 부럼) 깨물기’라고도 하고 ‘부럼 먹는다’고도 한다. 그러한 견과류를 일반적으로 ‘부럼’ 또는 ‘부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데 세시풍속으로 부럼 깨기가 이어져 온 데는 식품영양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음식을 골고루 잘 먹지 못해 부스럼이 생기고 건강상에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기름지고 영양이 많은 견과류를 먹으며 건강하길 기원했다.

부럼 깨기에는 겨울철에 부족하기 쉬운 필수지방산과 비타민 등을 보충하려는 의지도 담겨있다. 사실 견과류는 불포화 지방산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하므로 건강에 좋고 적은 양으로도 높은 열량을 섭취할 수 있기에 날을 정해 먹는 풍습을 만들어 건강을 지키려 했던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며칠 뒤면 정월 대보름이다. ‘대보름에 다른 성을 가진 세 집 이상의 밥을 먹으면 그해의 운이 좋아진다’라는 말이 있다. 정에 목마른 이때 부럼이 아니라도 가족 친지, 이웃과 먹을거리를 함께하면 어떨까. 꼭 국내산으로 말이다.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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