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설 코앞인데…그나마 오는 손님도 비싸다며 돌아서”
2024년 02월 04일(일) 21:00
명절 맞은 유통가 둘러보니
썰렁한 전통시장 대목 특수 실종
고물가에 상인도 소비자도 한숨
과일 가격 폭등에 못난이 과일 인기
백화점 선물세트 가격에 놀라
저렴한 인근 마트로 발길 돌리기도

설명절을 앞둔 4일 오전 광주시 동구 남광주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제수용품을 구매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직접 먹을 건 고사하고, 차례상에 올릴 굴비만이라도 사려 했는데 작년 추석보다 가격이 10% 넘게 올라 고민이 되네요….”

4일 오후 1시께 찾은 광주시 동구 학동의 남광주시장. 설 명절을 닷새 앞두고 제수용품을 구매하려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명절 대목을 맞아 평소보다 생기가 돌았지만, 정작 상인들의 입에서는 한숨 소리가 새어나왔다.

남광주시장에서 15년 째 굴비를 판매하고 있는 상인 A씨도 가격을 묻더니 발길을 돌리는 고객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손님이 가격을 묻더니 고민하는 듯 하다 별말 없이 떠났다”며 “아무래도 비싼 가격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A씨가 판매 중인 보리굴비 10마리 가격은 10만원으로 작년 추석 직전 가격인 8만5000원에 비하면 1만5000원이 올랐다.

그는 “굴비 도매가격이 많이 올라 팔아봐야 마진이 얼마 남지 않는데, 손님들은 비싸다고 난리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과일 가격에 청과 골목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아 있었다.

멋스럽게 포장돼 쌓여있는 과일 선물세트를 뒤로하고 정가보다 50% 가량 싼 ‘못난이 과일’을 찾는 시민들 뿐이었다.

30년 경력의 과일 판매상 B씨는 “선물세트 판매는 언감생심, 정상품을 찾는 소비자도 찾아보기 어렵다”며 “과일은 비교적 유통기한이 짧은데, 비싸게 사와 썩어버리면 골치가 아파 최근엔 못난이 과일을 주로 취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점포 앞에서 가격을 묻곤 고민하는 듯 하다 자리를 뜨길 반복했다.

아내와 함께 차례상에 올릴 제수용품을 구매하기 위해 남광주시장을 찾았다는 이영창(47)씨는 “아내가 1년에 두 차례 있는 명절인데 굴비는 올려야겠지 않냐고 해서 나왔다”며 “차례상에 굴비만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다 올라가는데 가격이 이래서 요즘 누가 예전처럼 차례상을 차리겠냐”고 하소연 했다. 이씨는 이어 “전통시장에서 제수용품을 구매하는 게 백화점과 대형마트보다 싸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는데, 막상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며 혀를 찼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분위기도 설 대목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비슷한 시각 찾은 광주시 서구의 광주신세계 지하 1층 매장에는 선물세트를 둘러보는 고객은 많았지만, 구매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박혜원(여·59)씨는 “사과 5개, 배 4개가 든 명품 과일 선물세트가 19만원이나 한다. 작년 설과 비교하면 구성은 빈약해지고 가격은 2~3만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비싼 백화점 선물세트 대신 비교적 저렴한 대형마트 선물세트를 찾아 나선 이들도 있었다. 광주신세계와 옆 이마트 광주점에서 만난 한 시민은 “백화점 선물세트 가격이 엄두가 안나 비슷한 구성이라도 절반 정도 싼 가격인 대형마트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청과 담당 판매 관계자는 “최근 과일 가격이 비싸다 보니 반대로 과일을 선물하려는 고객들이 많다”며 “그렇지만 워낙 많이 올라 ‘가성비’인 6만5000원짜리 사과, 배 세트가 가장 많이 나간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4인가족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기준 28만15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형마트에서 구매하는 비용은 38만580원으로 전통시장보다 35.2%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구매 비용은 지난해 설 때보다 각각 8.9%와 5.8% 늘어난 것이다.

시민들은 차례상 비용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진흥청이 지난달 29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8%가 설 장바구니 물가에 부담을 느끼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고, ‘매우 부담을 느낀다’도 71%나 됐다. ‘부담을 느낀다’(27%) 등이었다. 성수품 중 부담이 가장 큰 품목은 과일(65%)이었다.

/글·사진=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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