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피습 …‘한국 정치’가 테러 당했다
2024년 01월 02일(화) 19:50
부산서 60대 휘두른 흉기에…경정맥 손상 서울대병원 후송 수술
정치 양극화가 부른 참사 …총선 앞두고 여야 정치권에 큰 파장

부산 방문 일정 중 흉기에 피습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 방문 중 60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크게 다쳐 병원으로 이송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을 비롯한 정치권은 깊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양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 진영 간 증오와 폭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정치권은 ‘야당 대표 피습’이라는 충격파가 향후 총선과 정치 행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관련 기사 3·6면>

◇이재명 대표 부산 방문 중 괴한에 피습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27분께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를 둘러본 후, 기자들과 문답을 진행하던 중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남성 A(66)씨로부터 왼쪽 목 부위를 공격당했다. 이 대표는 피를 흘린 채 쓰러졌고, A씨는 현장에서 검거됐다.

사건 발생 20여분 만인 오전 10시 47분에 현장에 구급차가 도착한 데 이어 이 대표는 오전 11시 16분께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됐다.

이 대표는 의식이 있는 상태로 부산대병원에서 외상 담당 의료진으로부터 응급 처치를 받았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이 대표는 목 부위에 1cm 정도의 열상을 입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응급처치를 마친 이 대표는 이날 오후 1시께 헬기에 실려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이 대표는 경정맥 손상에 따른 수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이다.

경찰은 이날 지지자인 척 위장한 채 이 대표에게 사인을 요구하며 펜을 내밀다가, 소지하고 있던 흉기를 갑자기 휘두른 A씨를 상대로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하고 있다. A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죽이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범행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각종 사이트와 SNS를 통해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충격도 컸다. 특히 A씨가 이 대표의 목을 향해 흉기를 찌르는 장면이 여과 없이 국민에게 공개됐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이 대표의 모습도 사진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큰 충격을 줬다.

◇정치 양극화 심화 비판

이 대표 피습은 한국의 정치 양극화 심화에 따른 비극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해외 주요 언론들도 일제히 긴급 뉴스로 타전하며 이 부분을 집중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범행 동기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면서도 “한국의 정치는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더욱 분열되고 격렬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한국 정치는 최근 몇 년간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다”며 “4월 총선이 다가오면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 지지자들 사이의 적개심이 고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이날 “총선을 앞두고 진영대결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 발생한 이런 사태는 나라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신호탄 같다”고 지적했다. 또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대표가 피습당한 사례를 연상시킨다”며 “증오의 정치, 독점의 정치, 극단적인 진영대결의 정치가 낳은 비극”이라고 덧붙였다.

공진성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언제부터인지 정치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제거하려 들고 범죄자처럼 격리시키고 가두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다 보니 ‘검투사 정치’가 됐다”며 “이는 정치적 문제만 아니라 여러 혐오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한국 사회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인간이 사는 사회에 대립과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이를 해결하고 봉합해 공동체를 크게 만들고 끌고 가는 게 정치”라며 “이같은 상황을 정치인들이 직시하면 좋겠다. 남탓하지 말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신당 창당 등 정치권 파장은?

이날 이재명 대표의 피습에 따라 여야는 일부 일정을 취소하면서 여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6시로 예정됐던 대구·경북 신년교례회 등 일정을 취소했고, 소속 의원들에게 불필요한 발언 자제를 당부했다. 또 이날 오후 2시엔 여야가 만나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2+2 협의체 회의를 열기로 했는데, 이 일정 역시 연기됐다.

무엇보다도 최근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을 체제로 전환한 뒤 각종 여론조사에서 눈에 띄는 지지율 상승 효과를 누리고 있는 국민의힘은 이 대표 피습이 ‘한동훈 컨벤션 효과’에 미칠 영향에 대해 고심하며 극도로 공식 발언을 아끼고 있다.

민주당도 철저한 입단속에 나섰다. 홍익표 원내대표는 “당 의원들에게 대표의 쾌유를 비는 발언 이외 사건에 대한 정치적 해석이나 범인에 대한 언급은 자제해주시길 간곡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여야가 이 대표 피습에 대해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향후 총선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이재명 대표의 재판 연기가 불가피해졌다는 분석도 나오면서 ‘이 대표 사법리스크’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이낙연 전 대표와 원칙과 상식 소속 의원들의 거취 결단 시점도 미뤄질 전망이다. 이 전 대표는 이르면 이번 주 안에 탈당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지만, 이 전 대표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일단 탈당 선언을 미루기로 했다”며 “상황을 지켜봐야 하기에 이후 일정은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 주 안에 잔류, 탈당, 총선 불출마, 신당 합류 등 거취를 밝히려 했던 원칙과 상식도 발표 시기를 미뤘다.

지역 정가도 크게 술렁이고 있다. 소식을 접한 광주·전남지역 총선 출마 예정자들은 이날 오후 선거운동을 중단한 뒤 서울대병원으로 이동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폭력에 함께 대응하는 과정 속에서 일부 탈당 움직임과 계파 갈등이 봉합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이 상황에서 여야의 득실을 따지는 것은 맞지 않은 일이지만 총선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사건’임에는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오광록·김해나 기자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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