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착취 증거 없애려고?…계절노동자 강제출국 시도
2026년 03월 10일(화) 21:10
잇단 조사에 고흥 굴 양식장 등 필리핀 노동자 30여명 집단출국 당할 뻔
인권단체 “하루 12시간 일하고 월급 23만원”…감시·협박에 탈출도
경찰·노동당국 등 초동 대응 부실 도마에…군, 사업장 전수조사키로

9일 새벽 고흥의 한 굴 양식장에서 필리핀 계절노동자들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이동하려 했던 관광버스.<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제공>

경찰과 노동당국이 고흥 굴 양식장에서 발생한 필리핀 계절노동자들의 노동 착취 의혹을 조사중인 상황에서 브로커가 수십 명의 노동자들을 협박, 강제 출국시키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당국은 또 외국인 노동 착취 사건이 발생한 뒤에도 노동자들과 가해자로 지목되는 브로커·고용주 측을 분리하지 않아 2차 가해 등으로 이어질 수 있게 방치하는 등 인권 감수성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0일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브로커와 고용주가 지난 9일 새벽 1시께 고흥군 굴 양식장에서 필리핀 계절노동자 30여명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이동, 본국으로 강제 출국을 시도했다.

브로커측은 관광버스를 대절하고 필리핀행 항공권(38장)까지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페이스북 메신저 등을 통해 도움을 요청하면서 ‘공익변호사와함께하는 동행’, ‘광주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등과 버스 출발 직전 현장에 도착해 막았다는 게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측 설명이다.

인권네트워크측은 강제 출국 시도가 고용노동부·법무부·고흥군·전남경찰청·필리핀대사관 등의 외국인 노동자 조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발생했다는 점에서 증언을 하지 못하도록 핵심 피해자들을 출국시키려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손상용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인권침해 사건 뿐 아니라 강제출국 시도와 관련해서도 즉각 수사가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권네트워크측은 피해자 고소 뒤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가해자 측과 접촉이 가능한 사업장에 머물게 하는 등 피해자 보호 조치도 미온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앞서, 이들 단체들은 지난해 11월 어업 계절근로자(E-8) 비자로 입국한 20대 필리핀 여성이 굴 양식장 등에서 계약과 달리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며 채용 과정에 개입한 브로커와 고용주 등 6명을 근로기준법·인신매매피해자보호법·직업안정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계절근로자(E-8) 비자로 입국해 해당 양식장에서 굴까기 작업을 했던 필리핀 출신 A씨는 당초 근로계약과 달리 작업량 기준으로 급여가 지급됐고,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했음에도 첫 달 임금은 23만5671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도 수사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피해자 직접 진술이 확보되지 않으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기 어려운데, 사건을 인지하고 피해자를 만나려고 시도했지만 신원·연락처 등 정보가 없어 단체 측 변호사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은 “9일 단체 측 변호사들과 만나 강제 출국 사건 경위 및 피해 노동자를 브로커 측과 분리하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고흥군도 미흡한 외국인 계절노동자 실태조사도 인권 침해 사건을 불러왔다는 지적이 많다.

고흥군측은 “매년 계절근로자를 필요로 하는 고용주는 늘어나는데 관리 인력은 한정돼 있어 실태조사가 미흡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고용주들이 서류 준비 등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원래 고용주가 해야 할 업무를 브로커에게 맡기면서 브로커 개입 환경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했다.

손상용 운영위원장은 “현행 ‘농어업인력지원법’에 인권침해 고용주의 이주노동자 배정 허가를 취소하고 문제 사업장 노동자를 즉시 재배치할 수 있는 행정제재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고흥군은 오는 31일까지 군내 이주노동자 고용사업장 112개소 전체를 전수조사할 계획이다.

/하성민 기자 hs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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