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 아들 아닌 이정후가 되고 싶다”…광주 서석초에 뿌렸던 씨앗 꽃 피웠다
2023년 12월 17일(일) 21:05
양윤희 서석초 감독 “의지력 보고 ‘진짜’라 생각”

서석초 시절 이정후. <광주일보 자료사진>

‘이정후’가 되고 싶다던 이정후<사진>가 그 꿈을 이뤘다. 키움 히어로즈에서 활약했던 이정후가 지난 1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라클파크에서 입단식을 열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선수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올 시즌이 끝난 뒤 포스팅(비공개 경쟁입찰)을 신청한 이정후는 ‘6년 총 1억1300만 달러(약 1462억원)’이라는 한국인 역대 포스팅 최고액 기록을 작성하며 빅리그 입성의 꿈을 이뤘다.

광주 서석초에서 뿌렸던 씨앗이 마침내 꽃을 피웠다.

서석초에서 야구를 시작한 이정후에게는 늘 시선이 쏠렸다. 야구 실력도 뛰어났지만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유독 많은 시선을 받았다.

많은 압박감 속에서도 이정후는 남다른 멘탈로 자신의 길을 걸었다. 이정후는 서석초 시절 광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정후가 되고 싶다”는 꿈을 밝힌 적이 있다. 누구의 아들도 아닌, 제2의 누구도 아닌 ‘이정후’로 성공하고 인정받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결국 그 꿈을 이뤘다.

첫 제자로 이정후를 지켜봤던 양윤희 서석초 감독은 “달랐다”고 말한다.

양 감독은 “코치부터 해서 초등학생을 거의 20년째 가르치고 있는데 ‘다르다’라는 말밖에 못 하겠다. 달랐다. 이종범 선수의 아들이다 보니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어서 나 스스로도 똑같은 선수로 보고 대하려 노력했었다”며 “성적, 결과가 아니라 운동할 때 의지력을 보고 ‘진짜’라는 생각을 했다. 과정이 달랐다”고 이야기했다.

또 “자신감과 자존감도 높았고, 다른 선수와 경쟁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싸웠다. 남 의식하지 않고 구체적인 목표에 대한 노력을 했다. 조선대 108계단을 뛰는 훈련이 있었는데, 정후는 기준을 통과해도 또 뛰었다.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깨야 했다”며 “자신에게 엄격했던 만큼 과정 자체가 달랐다. 자신에게 엄격했지만 남에게는 관대했다. 특정 선수 때문에 경기를 지거나 문제가 생겨도 누구를 탓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양 감독은 ‘정신력’이 오늘의 이정후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무등중 시절 이정후가 서석초 은사인 양윤희 감독(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동휘 코치(오른쪽)와 찍은 사진. 29번은 KIA 김석환. <양윤희 감독 제공>
양 감독은 “어릴 때는 신체적인 부분이 중요하니까 더 잘하고, 좋은 결과를 내는 선수도 있었다. 수비력, 센스, 순간적인 판단이 좋았지만 작고 말라서 신체 조건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멘탈이 달랐다”며 “메타 인지 능력이 좋아서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잘 알았다.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황에 대처하고 상대를 이기는 방법을 알아냈다. 내야에서 외야로 이동할 때도 그런 모습을 봤다. 졸업할 때 홈런레이스를 했는데 정후가 1등을 했다. 홈런을 칠 수 있었던 아이였는데 경기 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부분을 물어봤더니 ‘자신은 그런 타자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던 게 기억이 난다”고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타고난 센스와 남다른 멘탈에도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압박감을 걱정했지만, 이정후는 스승의 우려를 씻고 최고의 선수가 됐다.

양 감독은 “우리나라 최고 스타플레이어 선수의 아들로서 압박감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겨냈다. 또 스타 선수지만 늘 같다. 학교에 와서 후배들을 대해도 그냥 동네 형이다. 인간미가 있다. 정후를 처음 만났을 때 30살 어린 감독이었고, 지도 방식도 달라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당시 다운스윙을 하던 때였는데 ‘하체를 기반으로 스윙을 크게 가져가야 한다’, ‘회전을 주라’고 했는데 그걸 편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며 “지금도 정후가 그 부분에 대해 고마움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을 다 갖춘 선수다. 이번 계약도 대박인데 그 이후에 더 잘될 것 같다고 덕담을 해줬다. 더 성장할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역시 서석초에서 이정후를 첫 제자로 만났던 동성고 김동휘 코치도 “누가 뭐라고 하든지 바라던 길을 보고 그 길만 걷는 선수였다. 스타여도 항상 바른 선수고, 한결같은 제자다. 장난도 치고 여전히 초등학교 때 꼬맹이 같다”며 “빅리그에서 견제도 심하고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인데 신경 쓰지 말고 배포 있게, 뚝심 있게 들이받아서 다 넘어서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여울 기자 wo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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