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남향집’을 보고 싶다
2023년 12월 05일(화) 20:00
10년 전 국립현대미술관(이하 현대미술관)덕수궁관에서 고 오지호(1905~1982)화백의 ‘남향집’을 마주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따스한 햇살과 대추나무의 푸른 그림자가 인상적인 그림은 오 화백이 유독 아꼈던 작품으로 유명하다.“‘남향집’은 나의 작품 활동에 문을 열었던 그림”이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그의 말대로 맑은 공기와 투명한 빛이 쏟아지는 화폭에선 남도의 정서가 묻어난다. 그래서인지 ‘남향집’은 미술사적 가치가 인정돼 2013년 국가등록문화재 제536호로 등재됐다. 당시 현대미술관이 주최한 ‘명화를 만나다-근현대회화 100선’에는 ‘남향집’(1939년 작) 이외에 ‘처의 상’(1936년작), ‘설경’(1971년 작) 등 오 화백의 대표작들이 대거 선보였다.

지난 1936년 세상에 나온 ‘처의 상’은 부인 지양진 여사가 모델이다. 흰색 저고리와 빨간 옷고름, 옥색치마의 색상을 대비시켜 한국적 인상주의를 보여준 수작으로, 그에게는 그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의 길을 선택한 그를 광주 지산동 초가에서 그림자처럼 내조한 부인에게 전하는 연서(戀書)였기 때문이다.

현대미술관은 국립미술관답게 ‘남향집’을 비롯한 오 화백의 작품 37점을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이 고향을 떠난 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오 화백이 별세한 후 지난 1985년 유족들이 이들 작품을 전남도에 기증하려 했지만 당시 변변한 미술관이 없어 부득이 현대미술관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생전 “작품 한점을 팔면 먼 객지에 딸을 시집보낸 것보다 더 마음이 아프다”던 그였지만, 영구보존할 전시장을 구하지 못해 ‘쫓기듯’ 광주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 때 현대미술관은 유족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상설전시관 건립을 약속했다. 하지만 미술관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38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작품들은 상설전시장이 아닌, 수장고에 박혀 햇볕을 보지 못하는 날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광주시와 지역에선 10여 년 전부터 현대미술관으로부터 오 화백의 작품들을 영구임대하자는 목소리가 제기돼왔다. 전시장이 없다면 모를까 번듯한 광주시립미술관이 있는 만큼 더 이상의 ‘타향살이’를 끝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이다. 절차상 영구임대가 어렵다면 현대미술관 광주관을 유치해서라도 상설 기획전을 통해 거장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대답없는 메아리로 끝났다.

최근 광주 문화계의 최대 숙원인 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에 청신호가 켜졌다. 내년도 국비에 대한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광주시가 요구한 ‘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을 위한 사전 타당성 조사 용역 예산 5억 원 가운데 2억 원이 반영된 것이다. 이달중으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최종 심사를 통과한다면 800억 원을 들여 2027년 옛 신양파크호텔 자리에 세계적 수준의 현대미술관 광주관이 들어서게 된다.

현대미술관 광주관은 소장품에 대한 호남권 수장고는 물론 미디어아트와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융·복합한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국내 유일의 미술관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현대미술관의 퀄리티 높은 컬렉션을 지역에서도 ‘자유롭게’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고무적이다. ‘남향집’의 온기를 광주에서 느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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