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의 추상’(抽象의 追想)…전남도의 추상미술을 기리며 회상하다
2023년 07월 23일(일) 19:20
11월 26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9명 작가 참여 회화·조각 60여점

광주시립미술관은 오는 11월 26일까지 남도의 추상미술을 조명하는 ‘추상의 추상’전을 개최한다.

역사적으로 남도는 의(義)의 불을 지폈던 뜨거운 고장이다. 의향이라 불리는 것은 그런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됐다. 예향으로도 명명되는 것은 시, 서, 화를 비롯해 다양한 예술 장르가 융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 분야, 그 가운데 추상미술은 예향이라는 수사에 필적할 만큼 활발하지는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척박한 추상미술의 토양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자신만의 격정적인 붓질과 정제된 손짓으로 풀어냈던 이들이 있다. 김환기, 강용운, 양수아, 김보현, 정영렬, 최종섭, 김용복 등은 추상미술을 뿌리고 개화를 견인했던 작가들이다.

남도의 추상미술을 톺아볼 수 있는 의미있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광주시립미술관 ‘추상의 추상’(抽象의 追想)전은 남도 추상미술 선구자들을 기리며 이들을 회상하기 위해 기획됐다. 지난 21일 개막해 오는 11월 26일(제3, 4전시실)까지 진행되는 이번 전시는 강용운, 정영렬, 김영중 등 9명 작가의 회화 및 조각 등 6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양수아 작 ‘무제’
1부 ‘낭중지추’(囊中之錐)에서는 해방 이전 남도에서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던 추상 1세대들이 주인공이다. 신안의 작은 섬에서 바라본 밤바다를 모티브로 큰 우주를 끌어낸 김환기, 이념 대립의 희생자로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지녔던 김보현의 작품을 만난다.

또한 중앙 화단보다 일찍이 비정형의 추상 형식을 선보인 강용운을 비롯해 민족 상쟁의 비극의 울분을 토해낸 양수아의 작품도 만난다.

근대 광주와 남도의 전통적인 미술 풍토와 현대사의 질곡에서 추상미술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과 조우한다. 감추려 한 송곳이 튀어나오듯 현대사의 곡절은 작가들에게 남다른 예술로 발현된다. ‘낭중지추’라는 주제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2부의 주제는 ‘일엽지추’(一葉知秋). 잎이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오는 것을 안다는 것으로, 지역 추상미술이 뿌리를 내리고 무르익음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수사다. 추상 1세대에게 미술 수업을 받았거나 중앙과 지역을 오가며 남도 추상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추상 2세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1950년대 이후 남도 화단은 조선대와 광주사범학교 등에서 배출한 신진 작가들로 활기를 띤다. 강용운은 전남여고에서 광주사범학교로 옮기며 제자들을 길렀고 이후 광주사범학교로 옮긴다. 양수아가 후임으로 오면서 광주사범학교는 명실공히 추상미술의 중추로 부상한다.

1960년대는 광주미술의 급변기였다. 강용운과 양수아 등이 전남현대미술가협회를 결성하고 이후 광주의 고교 미술부 학생들이 청자회를 결성했다. 1964년에는 최종섭과 박상섭, 명창준이 ‘비구상 3인전’을 개최했으며 자연스럽게 광주의 첫 추상미술단체인 현대작가 에뽀끄가 결성된다.

전시실에서는 시공간의 변화에서 생명을 포착한 김용복, 한지를 통해 한국적 정체성과 열반을 추구했던 정영렬, 30년간 ‘에뽀끄’를 이끌며 한국의 정서를 탐색한 최종섭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남도의 근현대 조각을 조감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만고천추’(萬古千秋)라는 주제로 기획된 3부는 오랫동안 기억될 지역 조각의 발전을 이끌었던 조각 1세대들의 손길을 느껴볼 수 있다.

김영중은 선과 면의 유기적인 조화로 독창적 조형미를 표현한 작가로 중외공원의 ‘광주어린이탑 큰 뜻’과 무지개다리인 ‘경계를 넘어’를 제작했다. 군더더기 없는 선으로 약동하는 생명력을 표출한 탁연하의 추상 조각들과 미처 선보이지 못한 작품들을 아카이브 자료로 살펴볼 수 있다. 지역 조각계에 미친 이들 작가들의 영향은 조각의 주재료인 청동과 철, 석재처럼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김준기 관장은 “이번 전시는 추상미술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기에 굴곡의 역사를 헤쳐 가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꽃 피웠던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이라며 “추상(抽象)을 매개로 추상(追想)할 수 있는 의미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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