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바람 속에서 은유의 철학을 - 김정희 시인·몽클레스 회원
2023년 07월 03일(월) 00:00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알랭드 보통의 글이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장소, 풍경의 도움으로 내적인 사유를 깊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철학반 ‘몽클래스’ 회원과 일반인 참여자 등 22명의인문·철학 테마 탐험대(?)를 조직 서유럽을 향해 떠났다. 하지만 우리가 텍스트로 읽던 자기 극복의 위버멘쉬 정신, 긍정의 에너지는 인천을 출발해 프랑크프루트 국제공항에 닿을 때까지 좁은 좌석 탓에 허공에 머물고 있는 새처럼 신경도 예민해지고 불편했다. 니체가 말하는 춤은 자유롭고 행복고 기쁜 것이며, 새는 그 자유로움의 상징이라는데 진리의 말씀을 찾아가는 길은 멀었다.

이국적 정서를 처음 느끼게 하는 프랑크프루트 공항의 간판을 흘깃 읽고 마인강과 독특한 모양의 지붕을 가진 구시청사, 과자집 같은 오스트차일레가 있는 뢰머 광장을 향했다. 신성 로마 제국의 역사를 상상케 하는 오래된 건축물의 매력은 탄성을 불렀다. 로마에 있지 않은 뢰머 광장 중앙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저울과 칼을 들고 시청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번 답사의 요지는 우리가 읽고 있는 ‘니체’다. ‘니체’는 헌책방에서 구입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꼬박 2주 동안 탐독하고 ‘이 책은 꼭 나를 위해 써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정의라는 진리를 죽임으로써 신을 죽인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우리가 죽인 신이 만들었던 영원불멸의 시스템은 행복과 슬픔, 분노, 공포, 모든 감정을 허무하게 만든다. 이 길 위에서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프랑크프루트의 지식 브레인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는 사회조사연구소를 거쳐 쇼펜하우어의 묘지를 찾았다. 가는 길은 표지판을 찾기 쉽지 않았지만 사진과 색색의 꽃들이 낭만적 거미줄처럼 조화를 이룬 길은 이 여행에서 우리가 얼마나 감성적인 길 위에 서게 될 것인지 알리는 나침판이었다.

칸트, 헤겔, 바그너 등 당대의 철학자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간의 본질을 의지의 표현이라 강하게 주장했던 쇼펜하우어의 검은 대리석 묘지에는 그의 이름만 소박하게 새겨져 있다. 일행은 흰 장미를 놓고 번갈아 셔터를 눌렀다. 햇살이 꽃잎에서 또르르 흘러내렸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히 부서졌다.

인문 철학 답사반을 이끌며 여행을 총괄하신 성진기 전남대 명예 교수님이 연구 교수로 머무르셨다는 800년 역사의 하이델베르그 대학을 둘러본다. 이 대학 도시는 많은 시인·예술가·사상가 학자를 배출하며 독일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곳이다. 독일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다는 이곳은 오랜 세월 동안 유럽 학문의 중심에서 밀려 나지 않고 인문학 분야의 인재들을 배출해 왔다.

작은 카페와 도서관, 책방, 고풍스런 교회, 박물관 등이 늘어선 정갈한 거리를 걸으며 변하는 것들과 변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격식에 얽매인 삶의 틀이나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갈망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구시가지와 네키어 강을 굽어 볼 수 있는 하이델베르그 고성은 과거에 대한 동경과 읽기와 보기를 함께 보여 주었다.

대학을 나서 네키어 강변의 다리를 건너면 ‘철학자의 산책길’이지만 여정상 멀리 바라보고 ‘황태자의 첫사랑’으로 알려진 곳도 주변만 보았다. 스트라스부르로 이동, 리슬링(Risling) 포도주를 시음할 수 있는 ‘리퀴에르’와 시내 관광을 하며 독일의 속살과 관념적이던 행복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이외에도 스위스 취리히 베니스 나폴리 로마 폼페이 답사를 통해 우리는 인문 철학의 예리한 사실주의를 체험했다. 물론 지면 관계로 다 담을 수 없어 이 기고는 여행의 서문인 셈이다.

앞으로 우리의 관광 여행도 단순 관광보다는 다양한 테마를 정해서 목적에 충실한 여행을 하는 것이 정체성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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