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모던의 건축 - 스베틀라나 보임 지음, 김수환 옮김
2023년 06월 30일(금) 09:00
근대 지성사를 성찰하는 오늘날 우리에게 ‘대안적 계보학’은 존재할까? 우리가 행해온 이론적 탐구들마저 주류역사의 뒤안을 훑는 작업에 불과하다는 발상은 흥미롭다. 모더니티의 정체를 탐구하는데 있어 ‘네오’, ‘트랜스’ 따위의 접두어마저도 지성사의 ‘다음(post-)’을 상정하지 못한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탈근대의 사유를 마련해줄 수 있을까.

이번에 ‘오프모던의 건축’이 문학과지성사 채석장 시리즈로 출간됐다. 이 시리즈는 논쟁적 주장을 펼치는 정치, 사회, 예술 에세이, 작가들의 편지 등을 소개하기 위해 기획됐다.

저자인 스베틀라나 보임은 성찰의 해답으로 ‘오프(off) 모던’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오프 모던이란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로 ‘존재한 적 없지만 존재할 수 있을 모더니티의 추론적 역사를 다시쓰기 위한 개념’이다. 책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이콘 ‘타틀린의 탑’의 예시를 통해 전위적 근대성들을 살펴본다. 종이건축의 미완성 모델로 평가받는 타틀린의 기념탑은 ‘유토피아적 비계’로도 비유된다. 모형으로만 만들어진 바 있는 탑이 가진 정치성 등이 오프모던의 초석이 된다고 밝힌다. 책은 이 상상들을 중심으로 근대사의 ‘유령적 존재’들을 탐구한다.

모더니티를 측면적으로 성찰하려는 시도는 역사 속에서 다채로웠다. 저자 또한 키치, 노스탤지어, 낯설게 하기, 폐허 등의 개념을 통해 근대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 왔다. 이외에도 중심적 해석을 빗겨 나가는 이론들은 다양하게 등장해왔지만, 책은 ‘측면적 잠재성’에 대한 발굴은 미진했다는 명제를 정면 겨냥한다. ‘오프 모던’의 개념이 파편적 역사해석의 대안적 잠재성을 획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문학과지성사·1만4000원>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