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도의 기억과 소록도의 미래- 박형철 전 국립소록도병원장
2023년 06월 25일(일) 18:40 가가
“1962년 정부는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약속한다. 오마도와 오동도를 연결해 둑을 싸 새로운 간척지를 만들면 그 땅을 한센인들에게 무상으로 분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소록도가 아닌 섬 밖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한센인들은 팔을 걷어 붙였다. 피땀 흘려 간척한 땅은 1500세대가 2500여 톤의 곡식을 생산할 수 정도의 드넓은 땅이었다. 수백 명의 한센인들이 2년 넘게 간척 공사에 매달렸지만 사업권 이전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혔고 1000헥타르에 이르는 비옥한 간척지는 결국 1988년 한센인들이 아닌 지역 주민들에게 분양되었다.”(‘국립소록도병원-아픈 100년의 역사·동행하는 소록도’)
역사를 돌이켜 보면 소록도와 고흥군(녹동)과의 역사는 명보다 암이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필자가 소록도에 부임한 초기만 해도 소록도 한센인들의 녹동 외출은 즐거운 경험만 있지 않았다. 지금은 고흥군청, 지역 주민, 정치권, 사회 및 종교단체 등의 노력으로 그런 사례가 거의 없어졌고 화기애애해졌다. 그렇다고 다수의 주민들이 쓰라린 경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아픈 경험을 가슴 한편에 묻고 이웃 주민의 선량한 의지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국립소록도병원 마스터플랜에 관한 기획 연구’를 발주했고 기본 연구를 토대로 내년에 심층 용역을 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주무 부처로서 당연한 책무이며 소록도의 미래를 엿볼 수 있어 한껏 희망에 부풀게 한다.
몇 가지 부연하고 싶다. 매년 발생하는 전 세계 한센병 새 환자가 20만명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보고한다. 주요 3개국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 위치한다. 우리의 매우 낮은 수준의 발생 현황에도 불구하고 절반 이상이 해외 이주민이라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국제 교류 시대에 한센병 방역 방향에 시사점을 준다. 통일 이후의 한센병 문제를 도외시 할 수 없다. 남한의 낮은 수준에 비해 북한은 기본적인 발생 자료조차 접근할 수 없다. 병원 기반의 한센병 진단과 치료 수준 유지 발전을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와 비슷하게 한센병을 통제하고 있는 영국이나 일본의 저유병 국가들이 연구 네트워크를 통해 한센 의료기술 발전, 국제 한센 보건에 기여한다는 점도 ‘국내 유일의 국립한센병 전문기관’ 소록도의 미래 비전에 참고할 만하다.
소록도는 고유성은 물론 많은 콘텐츠와 역사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에 전념해야 하는 국립 병원이지만 오래 전부터 ‘1종 전문 박물관’인 국립한센병박물관을 건립, 역사 문화 자료의 발굴·보존에 전념하고 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인근 자치단체인 고흥군이 비슷한 용역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록도병원 보존 관리·활용의 방향성 및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 연구 용역’이라는 명칭이었다. 왜지? 이웃집의 장래에 대해 관심과 고민은 인지상정이지만, 이웃집의 장래나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가당한 일인가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또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치단체의 따라하기는 예산 중복·낭비의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통상 용역의 특성상 발주처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다는 점, 그동안 지역 사회에서 소록도를 지역 개발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빈번했던 점을 감안하면 결과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상반된 결과가 나왔을 때 갈등 증폭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재의 병원과 지역 사회 관계는 한센인들의 뼈아픈 과거를 묻어 두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형국이다. 과거를 완전히 잊은 것이 아니라 가슴 한쪽에 잠시 묶어 둔 것이다. 그중 오마도도 마찬가지다. 장미빛 희망에 장애의 몸으로 노역에 종사하여 이룬 성과를 지역민과 정치권의 반대로 빼앗겼던 유쾌하지 않은 기억 말이다.
한센인들의 뜻이 존중되어야 하고,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기본 축은 국립소록도병원과 한센인이다. 국가 사적지 지정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나아가 지역 개발도 자치단체가 먼저 나서서는 안된다. 병원과 한센인들이 중심에 서고 정부·지자체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소록도 중심의 문화 유산 보존 발전에 대한 과거의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 조력의 범주를 넘어선 안된다. 오마도의 아픔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립 소록도병원은 어려움을 뚫고 지난 100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앞으로도 주위의 염원을 저버리지 않고 한센 보건의료 발전과 역사 문화 보존 등 과업을 헤쳐 나갈 충분한 역량과 자신감이 있다. 한센인들이 적극적 참여 속에 내일을 가꿔 갈 분명하고 주체적 의지가 있음을 믿는다.
소록도는 고유성은 물론 많은 콘텐츠와 역사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에 전념해야 하는 국립 병원이지만 오래 전부터 ‘1종 전문 박물관’인 국립한센병박물관을 건립, 역사 문화 자료의 발굴·보존에 전념하고 있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인근 자치단체인 고흥군이 비슷한 용역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록도병원 보존 관리·활용의 방향성 및 중장기 발전 계획 수립 연구 용역’이라는 명칭이었다. 왜지? 이웃집의 장래에 대해 관심과 고민은 인지상정이지만, 이웃집의 장래나 미래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가당한 일인가 고개가 가로 저어졌다. 또 세금으로 운영되는 자치단체의 따라하기는 예산 중복·낭비의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통상 용역의 특성상 발주처의 의지가 많이 반영된다는 점, 그동안 지역 사회에서 소록도를 지역 개발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빈번했던 점을 감안하면 결과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상반된 결과가 나왔을 때 갈등 증폭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재의 병원과 지역 사회 관계는 한센인들의 뼈아픈 과거를 묻어 두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는 형국이다. 과거를 완전히 잊은 것이 아니라 가슴 한쪽에 잠시 묶어 둔 것이다. 그중 오마도도 마찬가지다. 장미빛 희망에 장애의 몸으로 노역에 종사하여 이룬 성과를 지역민과 정치권의 반대로 빼앗겼던 유쾌하지 않은 기억 말이다.
한센인들의 뜻이 존중되어야 하고,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기본 축은 국립소록도병원과 한센인이다. 국가 사적지 지정도,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나아가 지역 개발도 자치단체가 먼저 나서서는 안된다. 병원과 한센인들이 중심에 서고 정부·지자체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소록도 중심의 문화 유산 보존 발전에 대한 과거의 약속’이 지켜져야 한다. 조력의 범주를 넘어선 안된다. 오마도의 아픔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립 소록도병원은 어려움을 뚫고 지난 100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 앞으로도 주위의 염원을 저버리지 않고 한센 보건의료 발전과 역사 문화 보존 등 과업을 헤쳐 나갈 충분한 역량과 자신감이 있다. 한센인들이 적극적 참여 속에 내일을 가꿔 갈 분명하고 주체적 의지가 있음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