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산골 마을 할머니의 콩- 나양기 (사)전라남도 지역특화작목 발전협회 회장
2023년 06월 21일(수) 00:00
어릴 적 할머니는 복숭아 과수원에서 자생하는 반하를 캐 말려 한약방에 팔아서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셨다. 외할머니께서는 영산강변 자투리 땅에 콩과 팥을 심어 자식들이 오면 한 자루씩 나누어 주셨다. 광주 인근 대촌에 사는 친구 어머니는 채소를 길러 양동시장 등에 가서 파셨다고 한다. 그래도 그때는 용돈을 직접 벌 수 있어 노부들이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 교통과 주변 여건이 좋아졌는데 오늘날의 할머니 어머니는 그 시절보다 더 두툼한 돈 복주머니를 차고 계실까?

우리나라의 경제력이 세계 10위라고 자랑들 하지만 먹고사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식량 자급률은 21%이며, 식량 안보 지수는 세계 8위인 일본보다 훨씬 뒤떨어진 32위라고 한다. 정부는 올해 식량 주권 대책을 내놓았다. 자급률이 불과 1.1%, 23.7% 밖에 안되는 밀, 콩 등을 전략 작물로 정하고 벼를 심는 논에 밀을 심고 콩을 심으면 직불금을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밀은 2027년까지 8.0%, 콩은 43.5%의 자급을 목표로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대다수 농업 정책이 국제 경쟁력을 키우려다 보니 대농 위주의 지원 정책에 수십억 수백억을 보조 지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100여 평 농사를 짓는 소농은 농부라고 말을 꺼내기도 부끄러울 만큼 면적 중심의 농사가 되었다. 콩의 경우 정부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촌경제연구원 장기 전망을 보면 재배 면적이 줄어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산골 어귀에서 콩 농사를 짓는 노령의 농부가 콩 농사를 포기하면서 재배 면적이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왜 산골자락에서 조금씩 농사를 짓던 할머니들이 콩 농사, 조 농사를 포기할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도시에서 성공한 자식들이 힘들게 농사를 짓지 않도록 말리는 경우도 있고, 복지 정책이 잘 되어 노령연금이 나오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력한 대가가 나오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싶다. 할머니들이 생산한 소량의 콩은 오일장이나 로컬 푸드에 내놓는 유통이 고작이다. 그런데 특성상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은 믿는 국산 농산물에 저렴한 농산물을 구하고자 하는 심리가 복합적으로 있어 높은 가격을 요구할 수가 없다.

식량 자급을 위해 밀·콩 등을 생산하는 들녘 경영체 대단위 단지 농가에게는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보조금을 지원하면서도, 시골 농촌을 지키며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토종 종자를 지켜가는 산골 마을 소농에 대한 지원 정책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곡물의 간디’로 불리는 인도의 반다나 시바는 식량 주권은 직접 종자를 관리하는 것이며 식량 주권을 찾으려면 종자 주권부터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령화 시대에 농촌을 지키며 생물 다양성과 식량 주권의 기본인 토종 종자를 지켜가는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시 호미 자루를 잡으실 수 있도록 촌로가 생산하는 소량의 콩 등에 특별 우대 장려금을 지불하는 정책의 도입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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