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선과 아집으로 전쟁을 망친 ‘졸장 열전’
2023년 06월 09일(금) 09:00
별들의 흑역사
권성욱 지음
나라와 나라간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영토 확장과 자원 확보에 목을 맨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이라면 더욱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무기와 전술로만 결판나지 않는다. 많지 않은 병력과 무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할지를 결정짓는 한 장군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전쟁의 결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원래가 초식동물이다. 이만큼 푸른 산에 둘러싸여 있으니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4년 당시 버마 주둔 일본군 주력인 15군 사령관 무다구치 렌야의 말이다. 그가 무리하게 벌인 ‘임팔 작전’의 경우 10만 여명 병력과 함께 소 3만 마리, 코끼리 1000마리, 양 1만마리를 이끌고 출정했다. 하지만 정글 특성을 무시한 보급이 차질을 빚었고 이질과 말라리아 등으로 고전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병력은 1만2000여명에 불과했다. 무리한 작전으로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그는 임종 때 “임팔작전의 실패는 자기 잘못이 아니다”는 팸플릿을 만들어 장례식장에서 나눠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임팔 전투후 노획한 일본군의 무기를 살펴보고 있는 인도·구르카 병사. <영국 ‘National Army Museum’ 홈페이지>
전쟁사 연구가 권성욱씨는 최근 펴낸 ‘별들의 흑역사’에서 “임팔작전은 단순히 중과부적으로 패했다기보다 기획 단계부터 개인적인 공명심에 눈이 먼 무책임한 졸속작전이었다”고 분석한다. ‘부지런하고 멍청한 장군들이 저지른 실패의 전쟁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한낱 잔챙이가 아니라 최소 사단장부터 한 나라의 총사령관에 이르는 중책을 맡은 거물급’ 12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독선과 아집으로 전쟁을 망친 ‘졸장(卒將) 열전’이라 할 수 있다. 무솔리니의 정치군인이었던 로돌포 그라치아니, 프랑스 명장에서 범장으로 전락한 모리스 가믈랭, 한국전쟁때 ‘현리전투’로 알려진 국군 3군단장 유재흥 등 국적도 다양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군대를 이끈 쿠르트 폰 하머슈타인-에쿠오르트의 ‘네 가지 유형의 장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장교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멍청하고, 게으른 장교다.”

그는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람으로 ‘멍청하면서 부지런함을 갖춘 자’를 꼽으며 “그는 무엇을 하건 간에 조직에 해를 끼칠 뿐이므로 어떤 책무도 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칠천량 해전(1597년), 쌍령전투(1637년)와 함께 ‘한민족 3대 패전’으로 불리는 1951년 5월 중공군의 제2차 춘계공세 때 강원도 인제에서 벌어진 ‘현리전투’의 결말은 독자들에게 경각심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3군단의 유일한 퇴로인 오마치 고개가 중공군 1개 중대에 장악되면서 두 개 사단으로 구성된 3군단이 지리멸렬했다. 중공군의 포위망 속에서 전체 병력의 30%, 장비의 70%를 잃었다. 미군 밴플리트 장군은 유재흥 군단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한국군 편제에서 3군단을 해체하고 작전권을 박탈해버렸다.

저자는 블로그 ‘팬더 아빠의 전쟁사’를 운영하며 각종 군사관련 글을 쓰고 있는 전쟁사 연구가이다. 앞서 2015년에 국내 최초로 중일전쟁을 다룬 역사서 ‘중일전쟁: 용, 사무라이를 꺾다 1828~1945’를 펴내는 등 중국 근현대 전쟁사와 2차 세계대전을 전문으로 다루는 역량이 돋보인다.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징비록’을 펴냈다. 책 제목인 징비는 ‘시경’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별들의 흑역사’ 또한 군인 뿐만 아니라 리더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다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훗날 만일의 사태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만약에 독자가 수만, 수십만 명의 젊은 목숨, 또는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장군이라면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처참한 전쟁터에서 어떠한 결단을 할 수 있을까? 역사에 ‘만약에’(if~)가 없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와 ‘똥별’ 졸장들의 실패담을 결코 흘려 들을 수 없다.

<교유서가·2만9800원>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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