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토리오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를 보고 - 강은희 수필가
2023년 05월 16일(화) 23:00
봄은 송화를 잘게 썰어 우리집 거실에 툭툭 던졌다. 여기저기 묻어나는 노란색, 5월이 시작된 것이다. 나의 대학 시절 5월은 송홧가루에 뒤섞인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함께 시작되었다. 5·18 오라토리오 공연 초청장의 검은 표지를 보며 그날의 함성이, 매캐함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올해는 어떤 모습일까? 오라토리오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는 고 문병란 시인의 5·18 관련 시에 호남신학대 김성훈 교수가 합창과 관현악 반주를 붙여 만든 서곡을 비롯한 13곡으로 된 교성곡이다. 연주회는 지난 12일 저녁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열렸다.

무대 오른쪽 한편에는 자그마한 무덤이 있어 그날의 비극을 묵묵히 드러내었다. 무대가 작년보다 조금 작아졌고 춤사위가 빠졌지만 덕분에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나름 괜찮았다.

꽃잎처럼 쓰러진 넋, 이유도 모르고 죽은 소년은 노래한다. 어머니… 어머니. 비석을 어루만지며 풀을 뽑으며 울기만 하는 어머니. 누가 그녀를, 그 아픔을 안아줄 것인가. 민주주의의 제단에 바쳐진 젊은 청년의 영혼은 구천을 헤매는데, 어떻게 그를 위로해야 하나. 가슴을 두드렸다.

구두닦이는 그날 처음으로 조국의 이름을 불렀노라 가슴 벅차한다. 풀뿌리 같은 민중의 강인함이여! 조국은 그에게 총부리를 겨누었지만 오히려 그 피가 장미꽃이 되어 조국에 민주의 꽃을 선사하였다. 수많은 전라도 뻐꾸기 울음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뚫고 민주주의로 부활하였다.

주먹밥을 나누며 하나 되었던 그날의 정신이 헛되지 않게 어두운 역사를 딛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일어나라고 외치는 이중창을 들으니 그만 마음이 뜨거워져, 합창단원이 일어서지 않았다면 내가 일어설 뻔하였다.

세계의 모든 신바람이 모여드는 광주, 빛고을. 그들의 고귀한 희생이 평화의 깃발이 되어 새벽에 오시는 연인인듯 민족 통일의 서광이 비쳐 오리라 힘차게 노래하며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광주시립교향악단의 뛰어난 연주와 광주시립합창단, 순천시립합창단의 아름다운 하모니, 솔리스트들의 협연은 연극 배우 강유미 님의 처연한 연기와 어울려 5월의 밤을 달궜다.

1789년 시작된 프랑스 혁명처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도 세계 인권 기록 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올랐다. 사실 너무 아파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기록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그것을 꾸준히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피가 어떻게 6·29 선언을 이끌어냈는지, 민주화의 꽃을 피우게 했는지 기념해야 한다.

드라마, 영화, 소설, 그리고 음악 5·18을 소재로 한 이러한 시도들이 고마운 것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이 위대한 유산을 기억하도록 끊임없이 담금질하기 때문이다.

‘빛이여 빛이여 빛고을이여!’는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직접 현장에서 그날을 겪었던 시인과 작곡가의 경험이 작품 곳곳에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5·18을 기억하려는 시도가 클래식 공연계에도 불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러한 시도가 꾸준히 이어지도록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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