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문자, 문자예술의 꽃을 피우다
2023년 05월 13일(토) 10:00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문자, 미를 탐하다 양세욱 지음
‘쓰고, 새기고, 꾸미는’ 예술은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바로 문자예술이다. 그렇다면 문자예술의 오브제는 무엇일까. 말 그대로 ‘문자’다.

오늘의 우리는 매일매일 문자와 벗하며 산다. 현대인들은 문자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것들이 문자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무수히 많은 문자를 접한다.

양세욱 인제대 국제어문학부 교수는 문자를 일컬어 “말이라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자 강을 건너기 위해 빌려 타는 뗏목”이라 말한다. 지극히 시적인 표현이다. 양세욱 교수는 또 이렇게 언급한다.

“사피엔스가 기억의 아웃소싱을 위해 개발한 수단이 문자다.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주목해야 마땅하고 강을 건넜다면 뗏목은 버려두고 떠날 일이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달과 함께 손가락을 주목했고, 강을 건너는 일과 뗏목을 타는 일은 둘이 아니라고 여겨 왔다.”

양 교수가 이번에 펴낸 ‘문자, 미를 탐하다’는 문자예술의 꽃을 피운 동아시아 문자를 조명한다. 저자는 동아시아가 문자를 다양하게 활용한 문자예술을 발전시켰다는 논리를 구체화한다.

스스로를 규정하는 내용이 책의 성격과 적절히 부합한다. “동과 서, 고와 금, 문(文)과 이(理)가 만나 때로 스며들고 때로 불꽃이 튀는 황홀경에서 공부의 보람을 찾는다”라는 표현은 이번 책에서 저자가 조망하고자 하는 문자의 세계를 대략 짐작하게 한다.

저자는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를 예술로 발전시킨 지역은 동아시아가 거의 유일하다고 본다. 유네스코는 2009년 중국에서 신청한 서예와 전각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한 바 있다. 그에 앞서 2008년 장예모 감독이 북경올림픽 개막 공연 당시 연출한 ‘서예’는 지구촌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문자들 중 가장 오래된 문자는 한자다. 인류 최초 문자인 슈메르인의 설형문자, 이집트 상형문자는 기원 이전에 사실상 문자로서의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기원 이전에 사용됐던 문자는 한족의 문자인 한자뿐이라고 본다. 한자의 자장 안에 있었기에 동아시아 문명은 ‘한자 문명’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즉 한자는 이후 발명된 동아시아 문자들의 ‘레퍼런스’라는 의미다.

전각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예술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김정희 종가 전래 인장(보물)’. <서해문집 제공>
“청사진 복사’에서 ‘아이디어 확산’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어느 한 지점에서 한자라는 문자의 선례를 참고해 만들어졌다. 한자에 비해 최소 2500년 이상 늦게 발명된 일본의 가나, 가나보다 몇백 년 뒤에 발명된 한국의 한글, 베트남의 쯔놈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동아시아 문자들은 ‘문화적으로 우세한 반면, 언어가 상이한 한자에 대한 수용과 변형, 모방과 창조라는 대립의 산물’인 셈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동아시아는 오브제로서의 문자를 모티브로 문자예술을 펼쳐왔다. 문자를 일컬어 ‘보이는 말이자 읽히는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기에는 문자를 매개로 한 예술인 서예를 비롯해 현대적 변용인 캘리그래피와 문자를 새기는 전각과 서각이 해당한다. 또한 문자를 꾸미는 문자도와 타이포그래피 등도 범주에 든다.

저자는 근대 이후 아시아 미를 탐색하는 일은 자기 완결의 과업이 아니라고 본다. 서구의 참조를 매개로 같고 다름을 되묻는 열린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러면서도 “‘중국적 세계 질서’ 안에서 전통 사회의 정체성을 추구해 온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여러 공동체는 ‘중국의 미’와 ‘서구의 미’라는 두 겹의 참조를 통해 ‘고유한 미’를 찾는 이중의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고 전제한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모두가 함께 나누었던 경험을 되살리는 일의 절박함”으로 귀결된다. “동아시아가 공유했던 미의 기억을 발굴하고 키워 내는 일만큼 절실한 다른 방법이 있을 것인가”라는 반문에서 이 책의 지향을 다소나마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서해문집·2만9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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