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이순신 발자취, 진화하는 일본의 역사 왜곡- 고광섭 전 국립목포해양대 교수, 이순신 칼럼니스트
2023년 05월 01일(월) 22:00 가가
<>올해도 이충무공 탄신 478주년인 지난 4월 28일을 전후하여 호남 지역 곳곳에서 탄신일 행사가 거행됐다. 매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에 전국 각지의 기관 또는 유관 단체 등에서 기념행사를 하는 목적은 후세들이 이충무공의 숭고한 정신을 잊지 않고 이충무공이 남긴 교훈을 본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호남 지역을 빼고 이순신의 정신과 발자취를 논하는 것은 이순신 역사의 반쪽에 불과하다는 전문가들의 인식은 대체로 일치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역사적 근거가 있다. 첫째는 임진왜란 초기 경상 해역의 수군이 무너지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주요 연안 지역과 항포구는 왜군들의 점령지가 많아 전남을 비롯한 호남 지역이 조선 수군의 병력이나 군수물자의 주 공급처였다는 점, 둘째는 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함대의 주력 부대가 해남에 본부를 둔 전라 우수군과 여수에 본부를 둔 전라 좌수군이였다는 점, 셋째는 임진왜란 당시 수군 부대와 인접한 연해 지역 백성이 수군의 징집 대상이였다는 점 등 임진왜란 시기 이순신과 호남 지역은 깊은 인연이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전남 연안 지역을 비롯한 호남 지역 곳곳에서 이순신에 얽힌 실화나 설화 등이 자주 오르내리는 것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순신과 호남 지역의 역사적 사실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호남 지역의 지역민, 유관단체 및 지자체 지도자들에게 관내 이충무공의 잊혀진 행적에 대한 현황을 조심스럽게 전하고자 한다.
첫째, 정유재란 발발 전 삼도수군 통제사 이순신이 극소수의 인원만을 대동하고 한산도에서 여수로 이동해 일본군의 재침에 대비하기 위해 전라도 내륙 깊숙한 곳까지 40여 일을 직접 순회하며 민심을 살피고 전비 태세 강화를 했던 생생한 행적은 아직도 우리의 관심에서 소외되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유재란 발발 3개월 전 전라도 내륙 전비 태세 검열 순회로는 여수, 순천, 낙안, 녹도, 장흥, 강진, 진도, 해남, 영암, 나주, 고막원, 무안, 함평, 영광, 고창, 장성, 광주, 화순, 보성, 순천, 여수 등 이순신의 유비무환 정신을 상징하는 구국의 육로였다. 아직도 이 길목 어느 곳에도 이충무공의 흔적을 살필 만한 표지석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둘째, 이충무공의 생애 행적 중 백의종군 육로의 여정 못지않게 처절했던 해상의 행적을 꼽는다면 크게 두 행로가 있다. 우선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소수의 패잔병을 이끌며 전략적 후퇴를 했던 장흥 회령포에서부터 결사항전의 명량해전 격전지 해남 우수영까지의 구국의 항로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는 명량해전 승리 직후 왜군의 추격을 피해 서남해의 오지의 섬과 바다를 전전하면서도 바다를 떠도는 피란민들을 위로하고 오직 조선 수군의 재건을 꿈꾸며 눈물과 한숨으로 보냈던 신안군 당사도·어의도·안좌도에서 목포 고하도까지의 구국의 해상 항로다. 이 행로 역시 접근하기 좋은 육지의 이충무공 발자취 등에는 표지석도 세워지고 나름대로 관심의 흔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호남 내륙이나 오지의 섬 발자취에는 시쳇말로 말뚝 하나 세워진 곳이 없다.
최근 일본의 노골적이고 표리부동한 역사 왜곡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진화하면서 국민들의 집단 속앓이도 커지고 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말은 호남 지역과 인연이 있는 대표적인 이충무공의 어록이다. 각종 기념행사나 선거철에 이충무공의 어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정치 지도자나 주요 인사들의 모습보다는 오지의 이충무공 발자취에 표지석 하나라도 세우는 지도자, 숭고한 이순신의 정신을 호남의 정의로운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지도자의 행동하는 자세가 반성할 줄 모르고 진화하는 오늘날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둘째, 이충무공의 생애 행적 중 백의종군 육로의 여정 못지않게 처절했던 해상의 행적을 꼽는다면 크게 두 행로가 있다. 우선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한 소수의 패잔병을 이끌며 전략적 후퇴를 했던 장흥 회령포에서부터 결사항전의 명량해전 격전지 해남 우수영까지의 구국의 항로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는 명량해전 승리 직후 왜군의 추격을 피해 서남해의 오지의 섬과 바다를 전전하면서도 바다를 떠도는 피란민들을 위로하고 오직 조선 수군의 재건을 꿈꾸며 눈물과 한숨으로 보냈던 신안군 당사도·어의도·안좌도에서 목포 고하도까지의 구국의 해상 항로다. 이 행로 역시 접근하기 좋은 육지의 이충무공 발자취 등에는 표지석도 세워지고 나름대로 관심의 흔적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호남 내륙이나 오지의 섬 발자취에는 시쳇말로 말뚝 하나 세워진 곳이 없다.
최근 일본의 노골적이고 표리부동한 역사 왜곡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진화하면서 국민들의 집단 속앓이도 커지고 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말은 호남 지역과 인연이 있는 대표적인 이충무공의 어록이다. 각종 기념행사나 선거철에 이충무공의 어록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정치 지도자나 주요 인사들의 모습보다는 오지의 이충무공 발자취에 표지석 하나라도 세우는 지도자, 숭고한 이순신의 정신을 호남의 정의로운 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지도자의 행동하는 자세가 반성할 줄 모르고 진화하는 오늘날 일본의 역사 왜곡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