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민중항쟁의 역사성, 훼손시켜선 안 된다 - 박봉주 광주·전남 추모연대 공동대표
2023년 04월 30일(일) 22:00
1980년 5월 당시 광주는 ‘빨갱이’의 도시였다. 계엄군에 의해 포위된 광주는 외로운 섬이었으나 그 안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가 구현된 1980년 5월이었다. ‘폭도’ ‘빨갱이’라는 오명을 벗는데 무려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1995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1997년 5·18 구 묘역에 잠들어 있던 5월 영령들이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이는 15년의 세월 동안 “5·18 진상 규명”을 외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목숨을 던지며 싸웠던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18 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항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폭도에서 5·18 민주유공자로 승격하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도, 광주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했던 자도 금방 밝혀질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날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월 19일 광주 시민을, 더 나아가 이 땅의 진정한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수많은 국민을 우롱하는 기막힌 일이 광주에서 벌어졌다. 일부 5월 공법단체와 특전사 동지회로 대변되는, 5·18 민중항쟁의 역사를 폄훼하고 왜곡하려는 자들이 ‘용서와 화해를 위한 대국민 공동 선언식’을 강행한 것이다.

그들은 시민을 향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학살을 한 특전사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용서·화해를 하고 그 바탕 위에 진상 규명을 앞당기겠다는 허무맹랑한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더 황당한 것은 그날 선언식에 참석한 특전사가 광주에 투입된 목적은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공동 선언식에 앞서 황일봉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 정성국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회장은 특전사 동지회 20여 명과 함께 국립 5·18 민주묘지를 기습참배했다. 1980년 5월 27일 도청을 함락하고 승전가로 불렸던 ‘검은 베레모’를 제창한다고 했지만 그 노래가 불려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참담할 뿐이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공수부대는 2023년 2월 특전사 동지회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보무도 당당히 그렇게 광주에 다시 왔다.

5·18단체 중 가장 큰 피해자라 할 수 있는 5·18유족회는 이 선언식의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불참했고, 광주 시민사회 또한 격렬히 반대했음에도 행사를 주도한 5월 두 단체는 당사자 주의를 표방하며 행사를 강행한 것이다. 이들 두 단체는 공동 선언식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를 향해 “피해 당사자들이 용서하겠다는 걸 왜 반대를 하냐”며 항변하는 모습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이게 얼마나 위험하고 과도한 주장인가?

5·18 민중항쟁은 수많은 사람들이 군부 독재를 종식하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저항과 투쟁으로 이어졌던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이었다. 또한 5·18 특별법 제정 과정은 어떠했는가? 이 법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청춘들과 국민들이 함께 싸워 왔다.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도 5·18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숨져간 홍기일·강상철·표정두·박태영·조성만·최덕수 등 열사들이 영면해 있다.

이런 사실 관계를 부정하고 80년 5월 광주를 피로 물들인 특전사를 초청해 화해와 용서를 외치는 5월 두 단체의 이중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실체가 명확해질 것이다.

다가오는 21일 5월 두 단체는 또다시 특전사 동지회를 초청해 국립 5·18 민주묘지 참배를 계획하고 있다. 이에 오월정신 지키기 범시도민 대책위는 “참배를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천명하고 역량을 모으고 있는 중이다.

광주 시민의 피로 새겨진 5·18 민중항쟁의 역사성을 훼손시키려는 5월 두 단체와 그에 동조하는 자들에게 5·18 민중항쟁의 참된 의미와 오월 정신의 가장 큰 밑바탕이 대동 정신임을 일깨워 주는 43주년이 되길 간절히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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