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 이성자 동화작가
2023년 04월 16일(일) 22:00 가가
십여 년 전 친구 집에 들렀을 때 주황색으로 활짝 피어 있던 군자란을 처음 만났다. 환하게 웃고 있던 꽃을 바라보니 당장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돌아오는 길에 포기 주위로 올라온 아기 촉을 얻어 와 심었다. 그런데 애지중지 보살피고 물도 자주 주었건만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친구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했더니, 군자란은 물을 너무 많이 주면 안 된다며 겉흙이 완전히 말랐을 때 주라고 알려 주었다. 먹기 싫은 물을 자주 주었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아기 군자란은 특별히 마음 쏟지 않고 때 맞춰 물만 주어도 쑥쑥 잘 자랐다. 삼 년 정도 지났을 무렵 기특하게도 긴 꽃대 끝에 고고하고 단아한 모습의 멋진 꽃을 여러 송이 피워냈다. 너무도 기뻐서 당장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아 친구에게 보냈다. 우리는 기쁨을 함께 나누며 전화로 그동안 지냈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남편 흉에서부터 자식 자랑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렸다. 모처럼 소리 내어 웃고 떠들었더니 가슴 밑바닥에 쌓여있던 스트레스가 풀리고 우울했던 기분도 말끔히 사라졌다.
몇 번의 꽃이 피고 지더니 군자란은 어미처럼 아기 촉을 여러 개 키워 냈다. 그 촉을 떼어 딸과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몇 년이 지나자 아들과 딸은 만나기만 하면 휴대전화에 저장해 둔 군자란을 꺼내 보이며 뉘 집 꽃이 더 예쁘게 피었는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누가 먼저 말을 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군자란 덕에 가족 단톡방까지 만들게 되었고, 시새워 군자란 사진을 올리곤 하였다.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의 매개체가 되어준 셈이다. 고맙게도 군자란은 30~40년 살 수 있는 장수 식물이라고 하니, 봄마다 주황색 꽃을 피워내며 오랫동안 즐거움과 괴로움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겠다.
요즈음은 다양한 반려 문화의 시대다. 기호에 따라 개, 고양이, 물고기, 햄스터, 거북이, 새, 각종 식물 등 그 종류도 다양할 것이다. 반려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주변을 보듬은 삶의 벗이 되었다는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군자란 역시 자연스럽게 나와 우리 가족의 반려 식물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인간과 반려의 관계는 함께 할 때는 즐거움과 행복으로 넘쳐 나지만 헤어질 때는 사랑했던 만큼 슬픔도 강렬할 것이다. 이제는 반려가 안겨주는 기쁨이나 슬픔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도 깊게 생각해 볼 문제다.
작년에 ‘걸음동무’에서 펴낸 동화 ‘숲으로 간 루비’를 보면 주인공이 기르고 있던 강아지 ‘루비’가 죽게 되자 몹시 슬퍼한다. 왈칵 눈물을 쏟아 내는 주인공에게 그의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모두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있어. 루비의 시간은 우리보다 조금 더 짧았을 뿐이야. 누구에게나 잠에서 깨지 못하는 날이 와. 엄마와 아빠에게도, 그리고 언젠가는 너에게도.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야”라고 들려준다. 엄마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 모르지만 주인공은 루비를 통해 삶과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고는 죽는다는 것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마음이 편안해진 주인공은 기억의 숲을 헤치고 깊숙이 들어간다. 다행스럽게도 루비는 건강한 모습으로 기억의 숲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주인공은 슬픔도 기쁨이나 행복만큼 값진 것이며, 루비가 그립고 슬프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루비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슬픔도 강렬할 것이며, 마음속에서 슬픔과 사랑이 밀물과 썰물처럼 파도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반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값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느덧 나의 반려가 된 군자란, 올봄에도 그리운 친구의 얼굴인 듯 아름답고 탐스러운 주황색 꽃을 선물로 안겨 주었다. 나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군자란 앞에서 도란도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작년에 ‘걸음동무’에서 펴낸 동화 ‘숲으로 간 루비’를 보면 주인공이 기르고 있던 강아지 ‘루비’가 죽게 되자 몹시 슬퍼한다. 왈칵 눈물을 쏟아 내는 주인공에게 그의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모두에게는 주어진 시간이 있어. 루비의 시간은 우리보다 조금 더 짧았을 뿐이야. 누구에게나 잠에서 깨지 못하는 날이 와. 엄마와 아빠에게도, 그리고 언젠가는 너에게도.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야”라고 들려준다. 엄마의 이야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다가갈지 모르지만 주인공은 루비를 통해 삶과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고는 죽는다는 것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된다.
마음이 편안해진 주인공은 기억의 숲을 헤치고 깊숙이 들어간다. 다행스럽게도 루비는 건강한 모습으로 기억의 숲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주인공은 슬픔도 기쁨이나 행복만큼 값진 것이며, 루비가 그립고 슬프다면 그건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루비를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슬픔도 강렬할 것이며, 마음속에서 슬픔과 사랑이 밀물과 썰물처럼 파도친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반려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값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어느덧 나의 반려가 된 군자란, 올봄에도 그리운 친구의 얼굴인 듯 아름답고 탐스러운 주황색 꽃을 선물로 안겨 주었다. 나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군자란 앞에서 도란도란 속마음을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