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가 무사히 살아가기를 - 유백순 동화작가
2023년 04월 05일(수) 22:00
지난달 어느 일요일, 가뭄 속에서도 가느다란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챙겨 산책하러 나갔다. 비 오는 휴일 아침이라서인지 가끔 보이던 몇몇 사람들마저 보이지 않았다. 복잡한 도시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행복감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어린아이처럼 빗물이 만들어낸 웅덩이를 첨벙첨벙 걷기도 하고,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때 남편이 도로 한쪽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갔다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납작 엎드려 있는 암두꺼비는 뒷다리를 다쳤는지 불룩한 배를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길을 건너려는 두꺼비들이 많이 보였다. 암두꺼비 등에 올라탄 상대적으로 작은 수컷 두꺼비들도 보였다. 새로 닦인 도로에는 차들이 쌩쌩 달리는데, 두꺼비들은 비가 오는 틈을 타 길을 건너가던 것이었다.

새로 지은 우리 아파트는 산을 깎은 자리에 지어서인지 공기도 맑고 좋다. 근처에는 물오리들이 사는 저수지가 있고, 한적하게 산행할 수 있는 코스도 있다. 이사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우리 집이 두꺼비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산을 허물고 지었던가 보다. 게다가 아파트 주변에는 도로를 여기저기 닦아 놓았으니, 겨울잠에서 깨어난 두꺼비로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 아니겠는가?

이후, 도로 한쪽에는 ‘두꺼비가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서행 부탁드립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아파트 입주자 카페에도 두꺼비 소식이 올라오고, 장갑을 끼거나 쓰레받기를 가져와 두꺼비를 안전하게 건너 주는 주민들도 많아졌다. 수시로 자전거로 저수지 주위를 돌며 맨손으로 두꺼비를 구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두꺼비가 로드킬을 당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고 있다.

봄이 오면 겨울잠에서 깬 두꺼비는 산에서 내려와 저수지에 알을 낳는다. 알이 부화해서 자란 새끼 두꺼비들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회귀본능이 있다. 이런 악조건에서도 운 좋게 길을 건너 저수지에 간 녀석들이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해 자란 새끼 두꺼비들이 다시 산으로 돌아갈 즈음이 되면, 이 도로는 다시 두꺼비들이 생사를 걸고 건너가야 하는 위험한 길이 되고 만다. 그동안 이곳에서 별일 없이 잘 살아왔을 두꺼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이유다.

그렇게 두꺼비들이 목숨을 걸고 길을 건너 저수지를 오고 간 지 3년째에 접어들었다. 그사이 개체수가 줄었다는 걸 증명하듯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도 첫해에 마주쳤던 만큼의 두꺼비는 보이지 않는다. 이사 오기 전에도 공원에서 두꺼비를 마주치는 일은 많았다. 하지만 그 두꺼비들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공원에는 차도 다니지 않았고, 끔찍한 일을 당한 두꺼비의 모습을 마주친 일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곳의 상황은 다르다. 우리 인간들이 오랫동안 그들이 오가던 길을 빼앗은 셈이니까.

두꺼비는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골이라서 모기가 많을 줄 알았는데 모기에 물리는 일도 거의 없다. 다른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건 두꺼비가 모기의 유충을 먹어 없애준 덕도 있을 것이다. 또한 두꺼비는 먹이사슬의 중간부에 위치하여 두꺼비 개체수가 감소하면 먹이사슬의 위아래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두꺼비들이 아파트를 짓기 전, 도로가 닦이기 전의 세상으로 돌려놓으라고, 자기 가족이나 친구들의 죽음에 대책을 마련하고 보상하라고 피켓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친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가 아파트를 허물고 깎은 산을 다시 붙이고 닦아 놓은 도로를 원상복구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파트 주변의 전원주택 단지에는 아직도 빈 땅이 많고, 지금도 그 땅에는 열심히 집을 짓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꺼비들은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 두꺼비가 다닐 길 정도는 내주어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이다. 앞서 이런 일을 겪은 지역에서는 어떻게 대처했는지 찾아보고, 두꺼비와 함께 살아갈 길을 서둘러 마련했으면 좋겠다. 두꺼비들이 길에서 끔찍하게 죽는 일 없이, 무사히 잘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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