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선물에 대한 단상- 박주정 광주 진남중 교장
2023년 03월 07일(화) 23:00
30여 년 전 실업계 고등학교(지금의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의 가정은 상당히 어려운 편이었다. 어쩌다가 잘 사는 학부모도 있었지만 근근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다. 치맛바람이 교직 사회의 부정적인 상징어로 오르내릴 때도 실업계 학교는 예외였다. 지금이야 사회적인 인식뿐만 아니라 법으로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촌지라는 말이 실재했던 시절 이야기이다.

스승의 날이면 어찌 됐든 성의 표시의 선물이라도 주고받았다. 그런데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많이들 씁쓸해 하셨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작은 선물 한두 개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이유도 있겠지만 학교 분위기가 그랬다. 자랑 같지만 스승의 날이면 나는 선물을 참 많이 받았다. 책상 위에 편지나 꽃, 작은 포장의 선물이 수북했다. 여러 선생님들이 이 모습을 쳐다보았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선생님도 없진 않았다. 이 선물을 집에 가지고 갈 수는 없었다. 마음에서 우러나기도 했지만 솔직히 다른 생각도 있어서 포장도 뜯지 않고 모두 나눠드렸다.

다만 그중에서 꼭 하나는 가지고 갔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고 시골에서 온 학생의 선물이었다. 한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자운영이라고 했더니 이 말을 기억했던가 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자운영 논에 가서 뿌리째 뽑아 스승의 날 선물로 가져왔다. 비닐봉지에 싸서 책상에 올려놨는데 물이 흘렀다. 주변 선생님들이 무슨 선물이냐고 물었다. “시골 사는 정욱이 있잖아요. 세상에, 정욱이가 내가 좋아한다고 자운영을 뽑아 왔네요.”

참으로 마음이 찡했다. 가난하기에 물건은 살 수 없고, 마침 자운영꽃을 좋아한다니 아침 이슬 털고 뽑아 온 것이었다. 받침이 틀린 편지도 함께 들어있었다. 지금까지 학생들에게서 받은 선물 중에 가장 뭉클하고 가슴에 남아 있는 선물이었다. 정욱이의 자운영을 빼고는 모두 나눠드렸는데 한 두가지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한 선생님은 넥타이 선물인 줄 알았는데 돈 봉투도 있었다며 가져왔다. 그것까지 다 드린 것이라며 돌려드렸다. 무안해 하면서도 내 마음을 읽었는지 내민 손을 거둬들였다. 지금도 엊그제 같은 교무실 풍경이 눈에 선하다.

또 하나는 거짓말이었다. 나는 스승의 날이면 아내를 속였다.

“도대체 얼마나 인기가 없기에 선물 하나를 못 받았는가요?”

보기에는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선물은커녕 꽃 한송이 없다고 비아냥이었다. 적당히 대답할 말도 없고 해서 그냥 웃기만 했다. 문제는 스승의 날 다음이었다. 우리 집은 학생, 학부모들이 편하게 드나든 편이었다. 학교 방문이 껄끄러운 사연이면 더 그랬다. 그런데 스승의 날 선물을 준 학생이나 학부모가 오면 난감했다. 나는 얼른 선수를 쳤다.

“여보 여보, 잘 받았다고 하세요. 그때 잘 먹었다고 하세요. 꼭 그렇게 말하세요.”

아내는 받지도 않고 자꾸 ‘잘 먹었다’ ‘잘 받았다’고만 시키니 싫어했다. 간혹 우리 집을 방문했던 한 학부모가 찾아왔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아내가 말했다.

“고맙게 주신 선물 잘 먹었습니다.”

“뭘요?”

“스승의 날에 보내주신 선물 말입니다.”

“그거 양말인데 맛있게 드셨다고요?”

학부모가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자 아내가 폭로했다.

“저 사람은 집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면서 맨날 거짓말을 시켜요.”

이 일이 있고 나서 그 학부모는 우리 반 학부모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담임 선생님한테 선물 드릴 일이 있으면 집으로 직접 전해 주라고 했다.

그런데 그 뒤로도 아내가 받은 선물은 별것 없었다. 아내에게는 선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우리 집 열 평의 아파트에서 여덟 명을 데리고 살 때 쌀이 떨어져서 쌀과 부식을 사느라 큰딸 돌반지를 전당포에 몰래 맡기고 기간이 지나 찾지 못했던 나를 지금도 툭하면 꺼내어 잔소리를 한다. 30년이 지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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