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자연의 리듬, 경칩(驚蟄)
2023년 03월 06일(월) 03:00
서금석 문학박사 전남대 호남학연구원 특별연구원
동북아시아의 주인공들은 정확히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었다. 태양력이다. 각각의 계절을 3개월씩 포함하여 12개월을 만들어냈다. 태음력이다. 다시 여기에 2배를 곱하면 24절기가 된다. 태양력이다. 태양력과 태음력의 절묘한 합의로 시간을 만들어 사용해 왔다. 고대시대 하루 16시간제가 운영되다가 결국 지금과 같은 12시간 체제(여기에×2=24시간)로 바뀐 것도 계절 변화에 따른 주야 장단의 길이를 조절하는데 12시간 체제가 더 유리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12시간 체제 혹은 24시간제가 자연의 리듬과 삶의 리듬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여타의 시간제와의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었다. 24절기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개구리 겨울잠 깨는 시절로 알려진 경칩(驚蟄)은 24절기 중, 세 번째 절기에 해당한다. 지금의 양력 3월 5일이 경칩이다. 간혹 3월 6일인 경우도 있다. 24절기는 태양력이다. 황도(黃道)와 적도(赤道)가 만나는 점에서 시작하는 춘분점이 황경(黃經)이 0도이니, 경칩은 황도 345도 지점이므로 황경으로 따지자면 마지막 절기인 셈이다.

놀랄 경(驚)자를 썼던 것으로 보아 곧 일어날 변화와 속도감을 짐작할 수 있다. 숨을 칩(蟄)자는 겨울 지나 숨어 지냈던 벌레들의 움직임을 예고한다. 경칩이 그렇다. 생동감이 있다. 24절기로 자리 잡기 전의 경칩의 선조뻘 되는 시절 이름은 계칩(啓蟄)이었다. 열 계(啓)자도 새로운 동작을 준비한다. 글자 속에서 패색이 짙은 추운 계절을 보냈던 땅 밑 벌레들의 움직임이 보인다.

24절기 출현은 고대 중국 통일 시기와 맞물려 있다. 천하 통일은 시간의 통일과 그 궤를 같이했다. 흔히 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제가 각종 도량형을 통일하고 그 기틀을 다졌다면, 그 뒤를 이은 한나라는 드디어 중국 최초의 공식 달력인 태초력으로의 시간 통일을 이루어냈다. 그때가 한(漢) 제국의 7대 황제 무제(武帝)였다. 지금의 24절기 체제는 한나라에 들어와 새로운 시간 질서가 되었으며, 천하 통일을 지속시켰다.

무제(武帝)의 아버지는 한나라 제6대 황제인 경제(景帝)이다. 그의 이름이 유계(劉啓)였다. 황제의 이름 계(啓)자는 그 누구도 그 어디에서도 작명 글자로 사용할 수 없었다. 황제의 이름을 피했다고 해서 이를 피휘(避諱)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계칩(啓蟄)은 그 뜻이 비슷한 경칩(驚蟄)으로 바뀌었다. 계(啓)자가 경(驚)자로 바뀌었지만 더 역동적이다. 경칩으로의 변경 역사가 간혹 한나라 무제의 이름을 피했다고 검색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무제의 이름은 유철(劉撤)이기 때문이다.

경칩과 춘분 사이에 이르러 꽃샘추위가 찾아온다. 따스한 햇볕과 달리 바람은 세차다. 일교차가 커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 자연은 분주하다. 사람도 분주했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때이다. 생명은 여기저기 색깔을 드러낸다. 완연한 싱그러운 자연의 리듬으로 바꿔 치는 시간이다. 개구리 알이나 도룡뇽 알이 연못 개울가에 흩어져 자생한다. 경칩은 그 시그널이다.

보릿고개를 넘기 힘들었던 우리 어른들은 바뀐 계절에 먹을거리를 찾아다녔다. 냉이를 깼고, 재배해 두었던 봄똥 채소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마침 고로쇠 채취도 우수 경칩 시기와 겹친다. 풍부한 미네랄뿐만 아니라 뼈와 위장과 신장 등에 좋다는 고로쇠 수액이야 일반인들은 그림의 떡이겠지만 고로쇠 섭취는 그 역사가 오래되어 영양 보충에 기여했다. 5월 보리 수확까지는 잘 버텨야 했다. 봄 채소 나물이 생존을 위한 계절 음식이었다.

그래서 경칩은 자연이 보여준 배고픔에 대한 극복의 메시지였다. 시절은 희망의 연속이다. 그것이 시간을 만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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