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가 ‘착한 일’이 아닌 돌봄이 되려면- 김지선 동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3년 02월 21일(화) 22:00
누군가가 ‘직업이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하면 대개 “착한 일 하시네요” 혹은 “어려운 일 하시네요”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모든 국가의 정책 목표이자 모든 이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행복의 총합인 사회복지가 어쩌다 ‘착한 일’ ‘어려운 일’이 되었을까.

대부분의 직업이 나름의 목적이 있는 착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유독 사회복지가 착한 일이자 어려운 일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사회복지사의 일을 더럽고,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유로 사회복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시민의 행복과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 시민이 선출한 정부는 사회복지 전달체계를 구축하고, 사회복지를 구현한다. 그러나 정부가 가가호호 방문하여 시민 개개인의 안녕을 살필 수 없기 때문에 이 역할을 사회복지사에게 위임한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직업적 목적은 시민 삶의 보호와 행복 증진을 위해 다양한 돌봄을 행하는 것이다. 그 돌봄 안에 ‘착한 일’ ‘어려운 일’이 포함된다.

사회복지사의 돌봄 행위가 더럽고 힘들다는 인식은, 돌봄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더러운 꼴을 보이는 것, 나의 처신을 맡기는 것은 민폐’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니 타인의 민폐를 감당하며 돌보는 사회복지사를 착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인식의 진짜 문제는 내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되었을 때 드러난다. 남에게 더럽고 못 볼 꼴을 보인다는 사실에 수치심과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내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하느니 죽는 게 낫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돌봄을 필요로 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서로 의존하고 의지하며 얽혀 사는 것이 사람의 필연이다. 나도 일상에서 누군가를 돌보고 있고, 누군가는 나를 돌보고 있다. 언젠가는 나의 몸을 누군가에게 돌봐 달라고 요청하는 순간이 올 것이고, 나도 누군가의 그런 순간을 돌보는 상황에 처할 것이다. 돌봄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상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에 수치심과 좌절감을 느끼면 나의 돌봄과 타인의 돌봄을 외면하게 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지 오래다. 돌봄과 사회복지를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회복지사의 희생과 봉사 정신에 의존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다수가 기피하는 일에 뛰어든 사회복지사들을 사회가 외면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돌봄을 외면하는 것과 같다. 국가를 대신해 시민의 삶과 행복을 돌보는 일을 더럽고,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일로 처우해서야 되겠는가.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내던지는 사회복지사들에게 합당한 처우와 지지와 응원이 뒤따라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을 보살펴 주고, 우리가 넘어질 때 다시 일어서도록 손 내밀어 줄 사회복지사들의 삶은 우리 국민이 보살펴야 한다.

광주시에는 사회복지시설 2209개소에서 일하는 8347명의 종사자가 있다. 사회복지시설 종사자 8347명이 광주시민 8만 1602명을 일상적으로 돌보고 있다. 또 광주 지역에 있는 약 7만 명의 사회복지사가 전체 광주시민(약 143만 명)의 삶을 돌보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당신은 우리 동네에 있는 사회복지사의 얼굴을 아는가? 그들의 존재를 아는가?

우리는 광주라는 공간에서 크고 작은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서로가 서로를 돌볼 때, 돌봄 노동의 가치는 재평가될 것이다. 돌봄은 사회복지사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돌봄은 우리 모두가 서로를 돌아보고 살필 때 가능하다.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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