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 두 시간의 집중을 권하며- 정 범 종 작가
2023년 02월 17일(금) 00:30 가가
나는 작가입니다, 하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러나 보다 하고 넘어간다. 희곡도 씁니다, 하고 말하면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본다. 그런 걸 쓰는 사람이 아직도 광주에 있나? 하고 서로 묻는 투로.
나는 작가여서, 그리고 작가답게 소설과 동화와 희곡을 쓴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셋의 매력은 뭔가요?’ 나는 셋 모두 쓰기 어려운데 이게 바로 매력이라고 했다.
희곡은 쓰기도 어렵지만 공연하기는 더 어렵다. 여기에는 배우, 연출가, 무대, 관객 등등이 함께해야 하니까. 말하자면 대형 프로젝트이다. 이런 대형 프로젝트가 광주에서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그런 점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연극 무대를 외면하고 유튜브나 OTT에 관심을 둔다. 거기에서 얻은 잡다한 지식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떠든다.
나는 젊은이들을 만나서 연극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 눈길을 돌리는 대신, 가끔 두 시간 정도는 봐야 할 것을 보는 게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충고만 하면 젊은이들은 웬 꼰대 짓, 하고 외면한다. 그래서 나는 젊어서 겪었던 일을 얘기해 준다.
내가 젊었을 때, 그러니까 지난 세기의 70년대 말에, 나는 서울에서 광주로 돌아오려고 야간열차를 탔다. 서울 용산역에서 광주역까지 완행표는 천이백 원이었는데 나는 돈이 부족해서 천안까지만 표를 끊었다. 천안에서 광주까지는 ‘도둑 열차’를 타기로 한 거였다.
나는 어떻게든 광주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열차가 천안을 지난 후에 검표원이 다가오면 자는 척하자. 그렇게 표 검사를 넘기자.’
그런 계획을 짜놓고 나자 약간 느긋해졌다. 졸음이 오자 잠을 잤다.
누군가 흔들었다. 검표원이 와서 표를 보자고 했다. 나는 잠든 척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말이 있다. ‘잠든 자는 깨울 수 있다. 그러나 잠든 척하고 있는 자는 깨울 수 없다.’ 이 말은, 무식한 자는 일깨울 수 있으나 거짓에 물든 자는 일깨우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다. 아무튼 나는 잠든 척하고 있는 자였다.
검표원은 나를 떠났다. 나는 계속 잠든 척하고 있으면서 생각했다. ‘이제 광주역까지는 별일 없이 가게 됐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떻게 하지? 광주역 주위는 담이 높아서 그걸 넘어 도망칠 수 없어. 거기에서 내리면 안 돼. 송정리역에서 내리자. 거기는 여기저기가 엉성하니까 빠져나가기 쉬워.’ (지금은 광주 송정역이지만 예전에는 송정리역이었다.)
나는 내 계획에 만족했고 다시 잠이 들었다. 실컷 자고 났더니 새벽이었다.
야간열차는 송정리역에 정차했고 나는 거기서 내렸다. 개찰구를 보니까 역무원이 하품하면서 표를 받고 있었다. 나는 개찰구의 반대쪽으로 가서 도망치기로 한 계획을 바꾸었다. 건성으로 일하는 역무원에게 표를 주고 개찰구를 통과하기로 했다. 나는 개찰구로 가면서 약간 초조했으나 그걸 숨기려고 주위를 둘러보며 느긋한 척했다. 나름대로 연기를 한 거였다.
개찰구에 이르러 천안역이라고 쓰인 데가 보이지 않도록 표를 뒤집어서 내밀었다. 표정은 느긋함을 연기했다. 역무원이 표를 받아서 그대로 표 무더기에다 올려놓았다. 나는 개찰구를 지나갔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된 게 만족스러웠다. 그 만족스러움을 즐기면서 역무원을 돌아보았다. 역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역무원이 표 받는 일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다음에는 제대로 표 끊어.”
나는 역무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내 표가 거짓이란 걸 알았어요? 그 표를 보지도 않았잖아요?”
“표 아닌 자네를 봤어. 자네는 개찰구로 다가오면서 여기저기를 보았지. 볼 만한 게 없는데도 그랬어. 자신을 위장하려고 그런 거지.”
역무원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쓸데없이 눈길을 여기저기로 주면서 자신을 위장하지 마. 봐야 할 것을 보면서 살아.”
그 후로, 나는 역무원의 충고에 따라 봐야 할 것을 보면서 살려고 노력해 왔다. 봐야 할 것들 가운데 연극이 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연극을 보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연극은 두 시간가량의 집중이야. 아는 척하려고 여기저기로 눈길 주지 않고, 연극을 집중해서 보면 만나게 돼. 여러 사람이 만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때로는 평생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
나는 작가여서, 그리고 작가답게 소설과 동화와 희곡을 쓴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았다. ‘셋의 매력은 뭔가요?’ 나는 셋 모두 쓰기 어려운데 이게 바로 매력이라고 했다.
충고만 하면 젊은이들은 웬 꼰대 짓, 하고 외면한다. 그래서 나는 젊어서 겪었던 일을 얘기해 준다.
나는 어떻게든 광주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계획을 짰다. ‘열차가 천안을 지난 후에 검표원이 다가오면 자는 척하자. 그렇게 표 검사를 넘기자.’
그런 계획을 짜놓고 나자 약간 느긋해졌다. 졸음이 오자 잠을 잤다.
누군가 흔들었다. 검표원이 와서 표를 보자고 했다. 나는 잠든 척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말이 있다. ‘잠든 자는 깨울 수 있다. 그러나 잠든 척하고 있는 자는 깨울 수 없다.’ 이 말은, 무식한 자는 일깨울 수 있으나 거짓에 물든 자는 일깨우기 어렵다는 뜻이라고 알고 있다. 아무튼 나는 잠든 척하고 있는 자였다.
검표원은 나를 떠났다. 나는 계속 잠든 척하고 있으면서 생각했다. ‘이제 광주역까지는 별일 없이 가게 됐다. 그런데 거기에서 어떻게 하지? 광주역 주위는 담이 높아서 그걸 넘어 도망칠 수 없어. 거기에서 내리면 안 돼. 송정리역에서 내리자. 거기는 여기저기가 엉성하니까 빠져나가기 쉬워.’ (지금은 광주 송정역이지만 예전에는 송정리역이었다.)
나는 내 계획에 만족했고 다시 잠이 들었다. 실컷 자고 났더니 새벽이었다.
야간열차는 송정리역에 정차했고 나는 거기서 내렸다. 개찰구를 보니까 역무원이 하품하면서 표를 받고 있었다. 나는 개찰구의 반대쪽으로 가서 도망치기로 한 계획을 바꾸었다. 건성으로 일하는 역무원에게 표를 주고 개찰구를 통과하기로 했다. 나는 개찰구로 가면서 약간 초조했으나 그걸 숨기려고 주위를 둘러보며 느긋한 척했다. 나름대로 연기를 한 거였다.
개찰구에 이르러 천안역이라고 쓰인 데가 보이지 않도록 표를 뒤집어서 내밀었다. 표정은 느긋함을 연기했다. 역무원이 표를 받아서 그대로 표 무더기에다 올려놓았다. 나는 개찰구를 지나갔다.
모든 것이 내 계획대로 된 게 만족스러웠다. 그 만족스러움을 즐기면서 역무원을 돌아보았다. 역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역무원이 표 받는 일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다음에는 제대로 표 끊어.”
나는 역무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내 표가 거짓이란 걸 알았어요? 그 표를 보지도 않았잖아요?”
“표 아닌 자네를 봤어. 자네는 개찰구로 다가오면서 여기저기를 보았지. 볼 만한 게 없는데도 그랬어. 자신을 위장하려고 그런 거지.”
역무원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쓸데없이 눈길을 여기저기로 주면서 자신을 위장하지 마. 봐야 할 것을 보면서 살아.”
그 후로, 나는 역무원의 충고에 따라 봐야 할 것을 보면서 살려고 노력해 왔다. 봐야 할 것들 가운데 연극이 있었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연극을 보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연극은 두 시간가량의 집중이야. 아는 척하려고 여기저기로 눈길 주지 않고, 연극을 집중해서 보면 만나게 돼. 여러 사람이 만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때로는 평생 마음에 남는 이야기를.”